오자기일기
어디서 부터 잘못 되었을까? 본문
짙은 안개 속을 홀로 걷는 것처럼,
일엽편주로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것처럼,
삶은 늘 막막하고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이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하십니까?
어떻게든 해보아야지 않겠냐며 사방팔방을 헤집고,
운에 맡겨 한쪽 방향을 정하고서 무조건
노를 젓고 있진 않습니까?
아니면 도무지 걷힐 줄 모르는 짙은 안개를 탓하고,
나를 구조하러 오지 않는 익명의 그를 원망하고 있진 않습니까?
질곡의 수렁에서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안 되는
자신의 모진 운명을 한탄하고 있진 않습니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냐고 투덜거리는 당신에게
부처님의 <원각경>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두려움과 외로움은 안개 탓도 누구 탓도 아니야,
단지 너에게 지혜가 부족할 뿐이야, 생각해봐. 별자리를 읽을 줄 아는 사람
나침반을 손에 든 사람에게는 짙은 안개와 망망대해가 문제 되지 않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어디가 동쪽인지 어디가 서쪽인지 몰라.
그냥 모르는 데서 그치면 다행이게. 제 맘대로 동쪽과 서쪽을 정해 버리지.
그게 착각이야. 착각으로 사방팔방 뒤죽박죽이 된 사람은 고단하게 애만 쓰지
끝내 짙은 안개와 망망대해를 벗어나지 못해. 삶도 마찬가지야.
삶이 이리 저리 뒤엉켜 혼란스러운 건 착각에서 비롯된 거야. 뭘 착각했을까?
제 맘대로 동쪽 서쪽을 정해버리듯, 흙, 물, 불, 바람이 잠시 모인 이것을
‘내 몸’이라 착각하고 빛깔, 소리, 냄새, 맛, 촉감, 관념의 그림자를
‘내 마음’이라 착각한 거야. 착각한 사람에겐‘내 몸’과 ‘내 마음’이
너무도 분명해. 하지만 그건 착각일 뿐이야.
그런 건 본래 없었어. 비유를 들어볼까?
눈병이 나면 허공에 뭔가 반짝반짝 날아다녀,
또 하늘에 두 개의 달이 보이기도 하지.
그게 눈병 탓인 줄 모르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거야.
“야, 저 동쪽 하늘에서 꽃이 피고 저 서쪽 하늘에서 꽃이 지네.”
“저기 좀 봐, 하늘에 달이 하나 더 생겼어.”
그게 눈병 탓인 줄 모르는 사람에겐 허공에서 피고 지는 꽃과 차고 기우는
쌍둥이 달님이 울고 웃게 하는 분명한 구실이 되겠지,
하지만 멀쩡한 사람이 곁에서면 그 사람의 기쁨과 슬픔은 도통
까닭 없는 짓이야.
삶도 마찬가지야. 몸도 마음도 인연의 그림자일 뿐인데 다들 삶을 살아가는
주체가 있다고 여겨, 착각을 바탕으로 ‘
나’를 집착한 사람에겐 얻음과 잃음, 성공과 실패가 너무도 분명하고
울고 웃는 까닭이 너무도 분명하지.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이 보면 도통 까닭 없는 짓이야.
[출처] 작자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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