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시를 왜 읽는가 / 김상천 본문
시는 왜 읽는가 이른바 문학의 기능은 무엇인가
달빛은 먹고 싶도록 싱싱하다
배치김치 같다
아니
오이김치 같다
달빛을 포식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부르면서 죽고 싶다
달빛은 여자 같다
입맞춤을 하고 싶다
어여쁜 얼굴에다가 입맞춤 하고 싶다
- 심재언, '월광곡'
여기, 시인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극적 화자, '나'가 있다
나는 배고프고 외롭다
결핍의 감정을 지닌 나는 어떤 충족을 기대하고 있다
월광, 달빛을 바라본다 아름답다, 하고 느끼는 순간 나는 갑자기 허기를 느낀다
육체의 허기일까 정신의 허기일까 그러면서 나는 이 아름다운 달빛이 배치김치처럼 절실하게 아름답다고 여긴다
나는 배고픔을 견디며 살아왔다
김치처럼 친근하고 포만감을, 쾌감을 주는 싱싱한 달,
그러니 나는 이 달빛을 노래하다 죽어도 좋았다
달빛은 또 여자다
나도향의 둥근 달이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 같은 달이지만
외로운 나에게 달은 입맞춤 하고 싶은 근원적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달,
어여쁜 너일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이 시를 지배하고 있는 시적 모티프는 '결핍'이다
다시말해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그는 지금 뭔가 부족한 상태에,
그리하여 절실한 충족이 요구되고 있는 상태에서 달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런 절실한 욕구를 그대로 절실하게 드러내면서도(부르면서 부르면서, ~싶다, 싶다)
이 절실한 욕구를 이미지로, 배추김치, 오이김치로, 다시 여자, 어여쁜 여자로 바꾸어 놓을 줄 알았다
청신한 감각과 함께 하면서도 원초적 욕망에 이끌리지 않고 우리가 즐겁게 이 시를 감상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렇게 시를 비롯한 문학이 고양된raised 쾌감을 선사하고 있다는 여유있는 정서에서일 것이다
자신의 정서에 충실하면서도 이렇게 이미지를 통
해 그 자신의 정서를 외화시켜 완곡하게 제어할 수 있다는 이것,
이것이 또한 시적 교양의 핵심이기도 할 터이다
교양의 핵심은 무엇보다 감정의 절제다
시는 왜 읽는가 아니, 왜 시를 읽어야 하는가
우리는 가치의, '심미적 절제aesthetic moderation'라고 부를 수 있을 독특한 가치의 체험을 위해 시를 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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