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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썹이라는 가장자리 / 김중일 본문

눈썹이라는 가장자리 / 김중일

난자기 2016. 3. 1. 18:02

눈동자는 일년간 내린 눈물에 다 잠겼지만, 눈썹은 여전히 성긴 이엉처럼 눈동자 위에 얹혀 있다.

집 너머의 모래 너머의 파도 너머의 뒤집힌 봄. 해변으로 밀려오는 파도는 바람의 눈썹이다. 바람은 지구의 눈썹이다.

못 잊을 기억은 모래 한 알 물 한 방울까지 다 밀려온다. 계속 밀려온다. 쉼 없이 밀려온다. 얼굴 위로 밀려온다.

눈썹은 감정의 너울이 가 닿을 수 있는 끝. 일렁이는 눈썹은 표정의 끝으로 밀려간다. 눈썹은 몸의 가장자리다.

매 순간 발끝에서부터 시작된 울음이 울컥 모두 눈썹으로 밀려간다.

눈썹을 가리는 밤. 세상에 비도 오는데, 눈썹도 없는 생물들을 생각하는 밤.

얼마나 뜬 눈으로 있으면 눈썹이 다 지워지는가에 대해서 생각하는 밤.

온몸에 주운 눈썹을 매단 편백나무가 바람을 뒤흔든다. 나무에 기대 앉아 다 같이 뜬 눈으로 눈썹을 만지는 시간이다.

겨드랑이나 사타구니의 털과 다르게 눈썹은 몸의 가장자리인 얼굴에, 얼굴의 변두리에 난다.

눈썹은 사계절 모두의 얼굴에 떠 있는 구름이다. 작은 영혼의 구름이다.

비구름처럼 낀 눈썹 아래, 새까만 비웅덩이처럼 고인 눈동자 속에, 고인의 눈동자로부터 되돌아 나가는 길은 이미 다 잠겼다.

저기 저 멀리 고인의 눈썹이 누가 훅 분 홀씨처럼 바람타고 날아가는 게 보이는가?

심해어처럼 더 깊은 해저로 잠수해 들어가는 게 보이는가?

미안하다. 안되겠다. 먼 길 간 눈썹을 다시 붙들어 올 수 없다. 얼굴로 다시 데려와 앉힐 수 없다.

짝 잃은 눈썹 한 짝처럼 방 가장자리에 모로 누워 뒤척이는 사람. 방 한가운데가 미망의 동공처럼 검고 깊다.

눈물이 다 떨어지고 나자 눈썹이 한올 한올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 사람의 가장자리에는 누가 심은 편백나무가 한 그루.

그 위에 앉아 가만히 눈시울을 핥는 별이 한 마리.

눈썹이라는 가장자리 / 김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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