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우리 옵바와 화로(火爐)> / 임화 본문

<우리 옵바와 화로(火爐)> / 임화

난자기 2016. 5. 12. 15:49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영남(永男)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ㅡ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 온 그 거북무늬 화로가 깨어

졌어요.

 

그리하여 지금은 화(火)젓가락만이 불쌍한 영남이 하구

저 하구처럼

 

똑 우리 사랑하는 오빠를 잃은 남매와 같이 외롭게 벽에

가 나란히 걸렸어요.

 

오빠…

 

저는요 저는요 잘 알았어요.

 

왜―그날 오빠가 우리 두 동생을 떠나 그리로 들어가신

그날 밤에

 

연거푸 말은 권련(卷煙)을 세 개씩이나 피우시고

계셨는지

 

저는요 잘 알았어요. 오빠

 

언제나 철없는 제가 오빠가 공장에서 돌아와서 고단한

저녁을 잡수실 때

오빠 몸에서 신문지 냄새가 난다고 하면

 

오빠는 파란 얼굴에 피곤한 웃음을 웃으시며

 

―네 몸에선 누에 냄새가 나지 않니―하시던 세상에

위대하고 용감한 우리 오빠가 왜 그 날만

 

말 한 마디 없이 담배 연기로 방 속을 메워 버리시

는 우리 우리 용감한 오빠의 마음을 저는 잘 알았

어요.

 

천장을 향하여 기어 올라가던 외줄기 담배 연기 속에서

―오빠의 강철 가슴 속에 박힌 위대한 결정과 성스러운

각오를 저는 분명히 보았어요.

 

그리하여 제가 영남이의 버선 하나도 채 못

기웠을 동안에

문지방을 때리는 쇳소리 마루를 밟는 거칠은 구둣 소리

와 함께―가 버리지 않으셨어요.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우리 위대한 오빠는 불쌍한

저의 남매의 근심을 담배 연기에 싸 두고 가지 않

으셨어요.

 

오빠―그래서 저도 영남이도

 

오빠와 또 가장 위대한 용감한 오빠 친구들의 이야기가

세상을 뒤집을 때

 

저는 제사기(製糸機)를 떠나서 백 장의 일 전짜리

봉통(封筒)에 손톱을 부러뜨리고

 

영남이도 담배 냄새 구렁을 내쫓겨 봉통(封筒) 꽁무니를 뭅니다.

 

지금―만국지도 같은 누더기 밑에서

코를 고을고 있습니다.

 

오빠―그러나 염려는 마세요.

 

저는 용감한 이 나라 청년인 우리 오빠와 핏줄을 같이한

계집에이고

 

영남이도 오빠도 늘 칭찬하던 쇠 같은 거북무늬

화로를 사 온 오빠의 동생이 아니에요

 

그리고 참 오빠 아까 그 젊은 나머지 오빠 친구

들이 왔다 갔습이다.

 

눈물 나는 우리 오빠동무의 소식을 전해 주고 갔

어요.

 

사랑스런 용감한 청년들이었습이다

 

세상에 가장 위대한 청년들이었습이다.

 

화로는 깨어져도 화젓갈은 깃대처럼 남지 않

았어요.

 

우리 오빠는 가셨어도 귀여운 '피오닐'영남이가

있고

 

그리고 모―든 어린 '피오닐'의 따뜻한 누이 품 제 가슴

이 아직도 더웁습니다.

 

그러나 오빠…

 

저뿐이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영남이뿐이 굳세인 형님을

보낸 것이겠습니까

 

슳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고마운 청년 오빠의 무수한 위대한 친구가 있고

오빠와 영님을 잃은 수 없는 계집아이와 동생

 

저희들의 귀한 동무가 있습이다.

 

그리하여 이다음 일은 지금 섭섭한 분한 사건을 안고 있

는 우리 동무 손에서 싸워질 것입니다.

 

오빠

오늘 밤을 새워 이만 장을 붙이면 사흘 뒤엔 새 솜옷이

오빠의 떨리는 몸에 입혀질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누이동생과 아우는 건강히 오는 날마다를

싸움에서 보냅니다.

 

영남 이는 여태 잡니다. 밤이 늦었어요.

 

―누이동생-



<우리 옵바와 화로(火爐)>, ≪초판본 임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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