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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편지 / 황동규

난자기 2017. 3. 5. 13:21

 


<Ⅰ>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Ⅱ>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황동규 / 즐거운 편지 -

 

사소함의 힘이란

골짜기에 퍼붓는 눈발보다 강렬하다

눈을 그치고, 꽃이 피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는 것도

사소함의 단편, 단편들

나의 사소함은 언제나 기다림으로

사랑을 지향하는데 있다


 

일출봉에 해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뜨거든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빨래소리 물레소리에 눈물 흘렸네


- 가곡 / 기다리는 마음-



일출봉에  늘 해가 뜨고 지고

월출봉에 늘 달이 뜨고 지고

님은 늘상 왔다 가거늘

어찌 님이 오지않는다고 눈물짓고 괴로워 하는가?

 

밀란 쿤데라의 "가벼움"이 단지 무게가 없음이 아닌 것과 같이

나의 소소한 일상의 사소함이

잠든 아기를 다독이는 어머니의 손길같이

나를 다져주는 아늑한 무게감인것을

그 무게감으로 내가 성난 묏바람에도 날아가지 않고

온전히 남아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사소함이 사소한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들 조차도

사소함으로 관조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 봄이 어떨런지?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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