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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만드신 당신께 / 박경리 본문

세상을 만드신 당신께 / 박경리

난자기 2017. 8. 14. 10:38



당신께서는
언제나 바늘구멍만큼 열어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이제는 안 되겠다 싶었을 때도
당신이 열어주실 틈새를 믿었습니다
달콤하게 어리광부리는 마음으로

어쩌면 나는 늘 행복했는지

행복했을 것입니다
목마르지 않게 천수를 주시던 당신
삶은 아름다웠습니다

ㅡ박경리, 세상을 만드신 당신께ㅡ




세상을 만드신 당신께!

나는 당신이 만든 세상에 사는 주민입니다

처음부터 여기 살려는 생각은 없었는데

내 뜻과 상관없이 여기서 태어나게 되었네요

물론 이것도 당신이 만든 작품이겠지요

그건 그렇다 치고

단도직입적으로 하나 물어 볼께요

당신이 세상을 만들고 나를 여기 갖다 놓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여기 사람들 누구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삶의 의미'가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마치 캄캄한 방에 장난감 몇 개와 함께 던져놓고

'잘 놀아봐라 '하는 식이네요

우리는 그 방을 '바늘구멍'만큼 뚫어 주면 당신께 감사해야 하고요

세상이 참 아름답다고 느끼게 됩니다

목마르지 않게 천수를 내리는 당신을 존경해야 하고요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당신은 참 무책임하고 오만하군요

왜냐고요?

아니, 생각을 해보세요

이 밑도 끝도 없는 삶을, 인생을 어떻게 하라고요

복잡한 전자제품을 구입했는데

사용설명서가 없으면 어찌합니까

이리 굴려 보고 저리 굴려 보고 하다가

망가지고 찢어지고 너덜너덜 거리는 인생입니다

기회는 단 한번 뿐인데 말입니다

당신은 고작 이렇게 말할 뿐입니다

"잘 안되면 전원을 끄고 다시 켜 봐!"

"리셋 몰라?"


나는 당신의 직무유기를 고발합니다

당신은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고 관대하지도 않았으며

공평하지도 않았지요

불의와 고통과 전쟁과 기아와 세상의 악을 다스릴 만큼

전능하지도 않았습니다

차라리 빅뱅으로 인한

"찬란한 별들의 후손"이라 믿는게 나을 것 같네요

그리고 내 인생은 내가 살거니까

더 이상 간섭하지 마세요!!

세상은 당신이 만든것인지 몰라도

내가 사는 세상의 주인은 바로 나입니다


-백난작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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