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세상을 만드신 당신께 / 박경리 본문
당신께서는
언제나 바늘구멍만큼 열어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이제는 안 되겠다 싶었을 때도
당신이 열어주실 틈새를 믿었습니다
달콤하게 어리광부리는 마음으로
어쩌면 나는 늘 행복했는지
행복했을 것입니다
목마르지 않게 천수를 주시던 당신
삶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ㅡ박경리, 세상을 만드신 당신께ㅡ
세상을 만드신 당신께!
나는 당신이 만든 세상에 사는 주민입니다
처음부터 여기 살려는 생각은 없었는데
내 뜻과 상관없이 여기서 태어나게 되었네요
물론 이것도 당신이 만든 작품이겠지요
그건 그렇다 치고
단도직입적으로 하나 물어 볼께요
당신이 세상을 만들고 나를 여기 갖다 놓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여기 사람들 누구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삶의 의미'가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마치 캄캄한 방에 장난감 몇 개와 함께 던져놓고
'잘 놀아봐라 '하는 식이네요
우리는 그 방을 '바늘구멍'만큼 뚫어 주면 당신께 감사해야 하고요
세상이 참 아름답다고 느끼게 됩니다
목마르지 않게 천수를 내리는 당신을 존경해야 하고요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당신은 참 무책임하고 오만하군요
왜냐고요?
아니, 생각을 해보세요
이 밑도 끝도 없는 삶을, 인생을 어떻게 하라고요
복잡한 전자제품을 구입했는데
사용설명서가 없으면 어찌합니까
이리 굴려 보고 저리 굴려 보고 하다가
망가지고 찢어지고 너덜너덜 거리는 인생입니다
기회는 단 한번 뿐인데 말입니다
당신은 고작 이렇게 말할 뿐입니다
"잘 안되면 전원을 끄고 다시 켜 봐!"
"리셋 몰라?"
나는 당신의 직무유기를 고발합니다
당신은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고 관대하지도 않았으며
공평하지도 않았지요
불의와 고통과 전쟁과 기아와 세상의 악을 다스릴 만큼
전능하지도 않았습니다
차라리 빅뱅으로 인한
"찬란한 별들의 후손"이라 믿는게 나을 것 같네요
그리고 내 인생은 내가 살거니까
더 이상 간섭하지 마세요!!
세상은 당신이 만든것인지 몰라도
내가 사는 세상의 주인은 바로 나입니다
-백난작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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