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엘레지 / 오탁번 본문
말복날
개 한 마리를 잡아
동네 술추렴을 했다
가마솥에
발가벗은 개를 넣고
땀 뻘뻘 흘리면서
장작불을 지폈다
참이슬
두 상자를 다 비우면서
밭농사 망쳐놓은
하늘을 욕했다
술이
거나해졌을 때
아랫집 김씨가 말했다
-이건 오씨가 먹어요,
엘레지요
엉겁결에
길쭉하게 생긴
고기를 받았다
엘레지라니?
농부들이 웬 비가를
다 알지?
-엘레지 몰라요?
개자지 몰라요?
30년 동안
국어선생
월급 받아먹고도
'엘레지'라는 우리말을
모르고 있었다니
나는
정말 부끄러웠다
그날 밤
나는
꿈에서 개가 되었다
가마솥에서 익는
나의 엘레지를 보았다
ㅡ오탁번, 엘레지ㅡ
엘레지,
아침?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의 끝 / 오세영 (0) | 2017.11.28 |
---|---|
벼랑의 나무 / 안상학 (0) | 2017.11.27 |
서릿발 / 송종찬 (0) | 2017.11.23 |
흙과 바람 / 조지훈 (0) | 2017.11.22 |
포장마차 / 김영광 (0) | 2017.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