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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 피천득

난자기 2019. 3. 27. 11:09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인연인줄 알지 못하고

보통사람들은
인연인줄 알아도
그것을 살리지 못하고

현명한사람은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을 살릴줄 안다

살아가는 동안
인연은 매일 일어난다
그것을 느낄수 있는 육감을
지녀야 한다

사람과의 인연도 있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인연으로 엮여 있다

ㅡ피천득, 인연ㅡ




소설은 있을 법 한, 우리의 삶과 닮았지만 현재에 없는 이야기. 시는 시인의 온 몸을 훑고 나온 사리같은 이야기. 수필은 고스란히 자신을 보여주는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다. 문학은 절반 이상이 허구가 기반이 되지만, 나로부터 출발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인 수필은 어려운 장르다. 아주 평범한 일상이 감동으로 되돌아오는 일은 쉽지 않다.

피천득은 수필로 승부수를 던졌다. 술술 큰 어려움 없이 읽히는 나지막한 삶의 이야기. 때론 울컥 치밀어 오르고 웃음도 슬픔도 가득한 그의 글. 『인연』이라는 수필집에는 피천득의 일생과 희로애락이 빼곡하다. 대한人 16번째 주인공 수필가 피천득이다.

▲피천득 작가. 사진=연합뉴스DB


거부의 외동아들에서 홀로 남겨진 금아(琴兒)

1910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피원근은 종로 일대와 양재동까지 땅을 소유했던 구한말의 유명한 거부였답니다. 거문고를 타고 노는 때 묻지 않은 아이라는 피천득의 호, 금아는 서화에 능했던 어머니와 연관된 이름이라고 전해집니다. 6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0세에 어머니마저 병으로 세상을 뜨자 외동아들이었던 피천득은 나홀로 세상에 남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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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삼촌댁에서 살게 된 피천득은 상해로 유학을 다녀왔고 1930년 신동아에 시 ‘서정소곡’을 발표하고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이후 시 ‘소곡’과 수필 ‘눈보라 치는 밤의 추억’을 연달아 발표, 호평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때부터 피천득의 문학정서는 소박했고 사상과 관념을 배제한 일상 생활을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로 문단에 데뷔했지만 담백한 피천득의 문체는 수필에서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리는 편지’, ‘은전 한 닢’ 등 초기의 작품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피천득 하면 떠오르는 ‘인연’ 1973년 출간한 수필집이죠. 이중 책 메인 제목인 ‘인연’은 일본 유학시절 아사코라는 여인과의 세 번의 만남을 다룬 작품인데요. 첫만남에서는 작고 예쁜 스위트 피, 두 번째 만남에서는 세련된 목련, 세 번째 만남에서는 시든 백합… 만남 때마다 꽃을 연상케 하는 그녀와의 20년을 세밀하면서도 축약된 짜임새로 담아낸 수필이었죠. 끝내 이뤄지지 못한 아사코와의 안타까움을 깔끔한 문체로 담아낸 피천득의 수필 가운데서도 수작으로 꼽힙니다. 인연은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세대가 사랑하고 완벽한 작품이었습니다. 인연 수필집에는 80여 편의 담겨 있는데요. 딸 서영이에 대한 사랑,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삶에 대한 소소한 관찰까지 발표된 지 44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읽히는 베스트셀러 중 하나입니다.

▲1999년 12월16일 한겨례와 인터뷰하는 피천득 작가.
▲1999년 12월16일 한겨례와 인터뷰하는 피천득 작가.


춘원 이광수, 도산 안창호, 이해인 수녀… 이 또한 인연

18세에 떠난 상해 유학은 사실 춘원 이광수의 조언으로 이뤄졌습니다. 금아와 어린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춘원은 그의 금아라는 호를 지어준 지인이기도 했습니다. 일찍이 피천득의 재능을 알아본 춘원의 도움으로 무려 3년이나 그의 집에서 머물기도 했습니다. 허나 피천득도 춘원 이광수의 친일 행동에 대해서는 “그는 아깝게도 한때 과오를 범했다. 이제와서 그런 말을 한들 무엇하리”라며 언급을 자제 했습니다. 그의 인품은 칭찬하고 본받고 싶어 했지만 친일행위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선을 긋는 모습이었죠.

춘원의 권유에 오른 유학길. 사실 피천득의 마음에는 도산 안창호를 만나고 싶다는 부푼 꿈이 있었습니다. 그 꿈은 마침내 스무살이 되던 해 이뤄졌는데요. “숭고하다기에는 너무나 친근감을 주고 근엄하기에는 너무 인자하였다”고 도산에 대한 인간적인 미를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이렇게 존경하고 인간적으로 따랐던 도산이지만, 피천득은 그에게 미안한 마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1938년 도산 안창호가 사망하자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일본이 장례식에 20명만이 들어가도록 제제를 가했습니다. 물론 피천득도 장례식에 참석했지만 신변의 위협을 느껴 차마 들어가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내 몸을 사리느라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 왜 내가 좀 더 용감하지 못했나 그런 걸 느껴요.”작가 이때를 두고두고 후회했다는 회고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춘원과 도산 그리고 이해인 수녀와도 피천득은 오랜 인연을 유지 했습니다. 30세가 넘는 나이차였지만 두 사람은 글과 글로 인연을 유지했습니다. 이해인 수녀는 첫 만남 이후 “선생님은 생과 사마저도 초탈해 버린 듯한 수사의 모습으로 그곳에 계셨어요. 아니 선생님의 글처럼 정갈하고 티끌 하나 없이 잘 정제된 수필이셨습니다…”라고 작가를 회고 했습니다. 유독 오월을 사랑했던 피천득 작가와 이해인 수녀는 참으로 인연이었습니다. 작가는 이해인 수녀를 향한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는데, 그의 시에서도 그 마음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나는 이해인 수녀님을 따스한 오월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오월같이 정다우며 / 글 또한 신록처럼 맑고 따뜻하다. / 이 행운을 그의 글 속에서 / 나누어 가지는 것은 /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피천득

▲1997년 동아일보에 실린 작가의 사진(왼쪽). 오른쪽은 1996년 6월14일 경향신문에 실린 피천득 작가의 인연 책 기사.
▲1997년 동아일보에 실린 작가의 사진(왼쪽). 오른쪽은 1996년 6월14일 경향신문에 실린 피천득 작가의 인연 책 기사.


내딸 서영이 그리고 어머니

“내 일생에는 두 여성이 있다. 하나는 나의 엄마고 하나는 서영이다. 서영이는 나의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내게 보내 주신 귀한 선물이다.”

피천득 작가의 삶을 되돌아 볼 때 빠질 수 없는 사람이 바로 막내 딸 피서영씨입니다. 작가의 딸 사랑은 유별났습니다. 자녀가 아들 둘에 딸 하나였는데, 대중들은 아들은 없고 딸 한명만 있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딸에 대한 애정이 넘쳤는데요. 인연 수필집에는 서영씨에 대한 이야기가 별도의 제목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미국에 다녀오면서 서영씨에게 선물한 인형 ‘난영이’는 서영 씨가 자란 뒤 50여년을 작가가 돌보았을 정도로 사랑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아이처럼 순수해지는 작가였습니다.

수필집에서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딸 서영씨는 이론 물리학자가 되었고 이제는 바이올리니스트인 스테판 피 재키브의 어머니가 되었죠. 스테판 피 재키브는 12세에 데뷔했고 2006년 서울시향과도 협연을 하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할아버지는 문학인, 어머니는 물리학자, 외손자는 예술인. 그리고 피천득의 큰 아들은 성우이자 라디오DJ였던 피세영, 둘째아들은 소아과 전문의로 아버지의 예술적인 재능과 이성적인 사고를 꼭 닮아 각자의 무대에서 큰 인물이 되었습니다.

딸 서영씨에 대한 사랑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도 연결됩니다. 피천득의 어머니는 아주 고운 얼굴에 가야금을 연주하던 분이였는데, 남편과 일찍 사별한 뒤에 정갈한 모습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피천득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늘 부재성을 지니고 있었나 봅니다. 어머니를 꼭 닮은 딸 서영씨의 모습에서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리움을 이겨냈던 것으로 보입니다.

피천득 작가의 삶은 검소하고 소박하고 담백했습니다. 현재 롯데월드 민속박물관에는 금아 선생의 기념관이 조성되어 있는데요. 이곳에 작가가 살았던 방의 모습을 그대로 재연해 놨습니다. 소박한 책장과 낡은 책상과 의자, 그리고 인형 난영이. 검소하고 정직하게 살라는 선생의 말씀은 삶 깊이깊이 베어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죠.

인연을 소중히 하고 작은 일상에 하나에도 의미를 두었던 작가. 글에서 느껴지는 진정성은 수필 작가로 살아가며 모든 것을 가감없이 보여주되, 문학적으로 승화시키는 그의 놀라운 천재성은 실로 고마운 자산이 되어 남아 있습니다. 책 겉면은 낡아가지만, 그 안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작가의 순수함과 순박함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습니다.

5월25일 피천득 작가가 눈을 감은 날입니다. 그리고 오는 29일은 작가가 태어난 날이자 영원히 세상과 안녕하고 떠난 날입니다(2007년 5월25일 사망했고 29일 영결실을 가졌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작가의 사진은 옛 신문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해맑은 미소를 남긴 피천득. 당신을 삶을 되돌아보며 맺은 인연. 소중히 이어가야겠습니다. /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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