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궁리 / 이영광 본문
궁리가 좋다
공부하기 싫어 볼펜 돌리거나
손가락 깨무는 아이들의
놀 궁리가 좋다
(노는 데 놀 궁리가 필요하다니)
인간은 놀아야 한다
모든 궁리가 좋다
살 궁리가 좋다
(사는 데 살 궁리가 필요하다니)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하는
뼈아픈 궁리들이 좋다
인간은 살아야 한다
웰 빙속에서 웰 다잉으로
유행처럼 번지는
죽을 궁리가 좋다
갑이든 을이든 병이든
그 모든 죽을 궁리가 좋다
(죽는 데는 죽을 궁리가 필요하다)
인간은 죽어야 한다
ㅡ이영광, 궁리ㅡ
※
인간은 죽는다
나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나는 죽는다.
이런 삼단논법이 아니더라도 누구가 죽음은 피치 못할 운명이라는 것쯤은 다 안다
죽음은 나이를 떠나 누구에게나 바로 옆에 있다지만
어릴때보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그에 대한 생각의 빈도나 심각성은 더해진다
솔직히 다가오는 나의 죽음이 두렵다
죽음에 따르는 육체적 고통과, 죽음 이후의 미지의 세계에 대한 원초적 불안감이
마치 유령처럼 머리를 흔들고 지나갈 때가 많다
그럴때마다
고대 그리스에 살았던 한 쾌락주의자를 떠올리곤 하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죽음이 없고,
내가 죽은 후에는 내가 없는데 무슨 걱정이람!"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일랑 말고 바로 지금 쾌락(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주만물이 원자로 되어있다고 주장하였고 말년에는 '정원공동체'를 만들어 제자들과 어울려 살다가 편안히 우주로 돌아 갔다고 한다
과연 철인은 철인이다 싶다
그러면 시인은 죽는데는 왜 죽을 궁리가 필요하다 했을까? (궁리(窮理),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함.마음속으로 이리저리 따져 깊이 생각하는 것)
미리 묘자리를 봐두거나, 미리 상속을 준비하거나, 죽고 나서 어디로 갈 것인지를 고민하라는 것이 아닐것이다
에피쿠로스는 그런 것들을 저급한 쾌락으로 보고 멀리했다
내가 우주의 먼지가 되기전, 그러니까 인간의 형상으로 존재하고 있는 바로 지금
존재로서의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것을 함으로써 나의 쾌락(행복)이 극대화 되는 것을 궁리하라고 채근하는 것이리라
그런 궁리도 쉽게 풀어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아무튼 궁리해 보기로 하자
- 백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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