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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갔니 / 김헤수 본문

어디갔니 / 김헤수

난자기 2019. 3. 29. 13:55




잃어버린 무선전화기를
냉동실에서 찾았어
어느 날 내 심장이
서랍에서 발견되고
다리 하나가 책상 뒤에서
잃어버린 눈알이
화분 속에서 발견될지 몰라
나는 내가 무서워
앞마당에 나왔는데
무얼 가지러 나왔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아
괜히 화초에 물이나 주고
시든 잎이나 떼는
그, 짧고도, 긴, 순간
나는
어디로 줄행랑친 걸까
빈집의 적요처럼 서 있는
너, 누구니
내가 혹
나를 찾아오지 못할까봐
환하게 불 켜고 자는 밤
이번 생에
무얼 가지러 왔는지
도, 도무지 기억나지 않아

ㅡ김혜수, 어디갔니ㅡ



너는 누구냐 라고 누군가가 나에게 물을때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결정적인 증거

나의 뇌속에 퇴적되어 있는 기억의 단편들이다

마치 바위에 새겨진 수억년전의  발자국을 분석히여 공룡의 존재를 밝혀내듯이

나의 존재도  어느 동굴속에 그려진 벽화처럼

기억속에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다

그런데 어느날

그런 기억들이 지워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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