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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 신철규 본문

눈보라 / 신철규

난자기 2019. 8. 30. 11:00

이 배는
항구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악몽 속의 악몽처럼

앙상한 깃대에 밧줄로 몸을 묶고
눈보라 속에 있으면
증기선은 사나운 짐승이 되어 간다
검붉은 연기를 토해 내며

내가 보고 있는 눈보라
나를 보고 있는 눈보라

누군가 빠르게 지구를 돌리고 있다
얼어붙은 눈에 뜨거운 눈물이 솟는다

내 눈을 후벼 파는 손가락이여
내 눈 속을 파고드는 무거운 천사여

하늘을 향해 치켜 올린 말발굽처럼
목을 조르려는 손아귀처럼
우리는 딱딱한 기도에 몸을 맡긴다

증기선과 항구 사이에
매서운 눈보라가 가득하다

ㅡ신철규, 눈보라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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