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도종환, 해장국ㅡ 본문
사람에게 받지 못한 위로가
여기 있다
밤새도록 벌겋게 달아오르던
목청은 식고
이기지 못하는 것들을 안고
용쓰던 시간도 가고
분노를 대신 감당하느라
지쳐 쓰러진 살들을
다독이고 쓰다듬어 줄 손길은
멀어진 지 오래
어서 오라는 말 안녕히 가라는 말
이런 말밖에 하지 않는
주방장이면서 주인인
그 남자가 힐끗 내다보고는
큰손으로 나무식탁에 옮겨다 놓은
콩나물해장국 뚝배기에
찬 손을 대고 있으면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어디서 이렇게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으랴
떨어진 잎들이 정처를 찾지 못해 몰려다니는
창밖은 가을도 다 지나가는데
사람에게서 위로보다는
상처를 더 많이 받는 날
해장국 한 그릇보다
따뜻한 사람이 많지 않은 날
세상에서 받은 쓰라린 것들을 뜨거움으로 가라앉히며
매 맞은 듯 얼얼한
몸 깊은 곳으로 내려갈
한 숟갈의 떨림에
가만히 눈을 감는
늦은 아침
ㅡ도종환, 해장국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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