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김수열, 마라도에서 ㅡ 본문

김수열, 마라도에서 ㅡ

난자기 2020. 8. 28. 13:58
다섯 통의 전화를 받았다
세 통은 축하한다는 거고
나머지는 한잔 사라는 거였다
고맙다고 했고
지금은 마라도에서
유배 중이라고 했다
배가 끊겨 섬이
가벼워지는 날이면
아낙들은 점당 백 원짜리
고스톱을 치고
남정네들은 문어 삶아
술추렴을 한다
바쁘게 섬을 돌던 카트도
모처럼 주무시고 계시다
인터넷도 끊기고 에어컨도
돌아가지 않는다
내일이 백중인데 배가 끊겨
떡이 올 수 없다며
보살이 발을 동동 구른다
이번 부처님은 지지리도
먹을 복이 없나 보다
태풍 무이파가 몰려오던 날
어느 시인은
히말라야 산맥이 달려드는 것
같다 했고
섬이 흔들려
심한 멀미를 느꼈다 했다
오후가 되자 바람 끝이
사나워지고
바다는 하얀 이빨 드러내고 으르렁거린다
내일도
섬은 가벼워질 것이다
ㅡ김수열, 마라도에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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