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고형렬, 바람 나뭇잎ㅡ 본문

고형렬, 바람 나뭇잎ㅡ

난자기 2020. 9. 22. 12:34

 




나 오랜 옛날에
나무인 적 있었다
다른 세상의 햇살이 지나가고
치마자락을 흔들어대는
바람이 불던 날

나 그때
나무였던 것이 분명하다
이제야
그 아련한 추억들이 수런인다
우주 낯선 강 멀리
키는 하늘에 닿아
수도 없이 돋아나오는
나뭇잎들이 되면서
나는 비로서 아주 먼 그 옛날
내가 귀여운 애기잎사귀들을 흔들어주면서
바람으로 돌아오는
나를 보았었다, 그때
나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서야
아련한 추억들이 살아난다

파란 바람이
불어오니라 불어가니라
알려고 하는 자에게만
비밀을 알려주고
제 나뭇가지들을 흔들어주어라
나 옛날에 바람이었던 때가
즐거웠다
그때가 아름다운 때였음을
알게 되었다

 

ㅡ고형렬, 바람 나뭇잎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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