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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다라의 구슬, 박노해 ㅡ 본문

인다라의 구슬, 박노해 ㅡ

난자기 2020. 12. 18. 21:54

박노해 시인

 

인다라의 하늘에는 구슬로 된 그물이 걸려 있는데 구슬 하나하나는

다른 구슬 모두를 비추고 있어 어떤 구술 하나라도 소리를 내면

그물에 달린 다른 구슬 모두에 그 울림이 연달아 퍼진다 한다

- 화엄경

 

작은 연어 한 마리도 한 생을 돌아오면서 안답니다

작은 철새 한 마리도 창공을 넘어오면서 안답니다

지구가 끝도 없이 크고 무한정한 게 아니라는 것을

한 바퀴 크게 돌고 보면 이리도 작고 여린

푸른 별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구 마을 저편에서 그대가 울면 내가 웁니다

누군가 등불 하나 켜면 내 앞길도 환해집니다

내가 많이 갖고 쓰면 저리 굶주려 쓰러지고

나 하나 바로 살면 시든 희망이 살아납니다

 

인생이 참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세상이 참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한때는 씩씩했는데, 자신만만했는데,

내가 이리 작아져 보잘것없습니다

아닙니다

내가 작아진 게 아니라 큰 세상을 알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관계 그물이 이다지도 복잡미묘하고

광대한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세상도 인생도 나도 생동하는 우주 그물에 이어진 작으나 큰 존재입니다

지금은 개인의 시대라고 합니다

우주 기운으로 태어나 우주만큼 소중한 한 생명,

한 인간이 먼저, 내가 먼저입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내 한 몸 바치는 것을 미덕으로 교육받아온

개인 없는 우리에서

자유롭게 독립하여 주체적인 개인들의 연대

개인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정보화 시대라고 합니다

세계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거대한 정보 네트워크가

구슬처럼 빛나는 개개인을 하나로 엮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인다라의 구슬처럼

지구 마을의 큰 울림을 만들어가는 주체입니다

 

새벽 찬물로 얼굴을 씻고

서툰 붓글씨로 내 마음에 씁니다

 

오늘부터 내가 먼저!

 

내가 먼저 달라지기

내가 먼저 인사하기

내가 먼저 정직하기

내가 먼저 실행하기

내가 먼저 손 내밀기

내가 먼저 돕고 살기

 

무조건 내가 먼저

속아도 내가 먼저

말없이 내가 먼저

끝까지 내가 먼저

 

 

ㅡ빅노해, 인다라의 구슬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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