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나무, 곽재구 ㅡ 본문
인간이 내가
인간이 아닌 나무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싶을 때
나무는
고요히 춤을 춘다
모르는 이들은
만행 중인 바람이
나무의 심연을
헤적인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나무는
제 앞에 선 인간에게
더덕꽃 향기 짙은
제 몸의 음악을
고요히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나무는 춤을 출 때
잎사귀 하나하나
다른 춤의 스텝을 밟는다
인간이 당신이 나뭇잎 속으로
들어와 춤을 출 때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그러다가 홀연 당신 또한
온몸에
푸른 실핏줄이 퍼져나간
은빛 이파리가 된다
인간이 아닌 나무가
인간인 내게
시를 읽어주고 싶을 때
나무는 고요히 춤을 춘다
세월이 흘러
나무가 땅에 누우면
당신도 나란히 나무 곁에 누워
눈보라가 되거나
한 소쿠리 비비새 울음이 된다
먹기와집 마당을 뒤덮은
채송화 꽃밭이 된다
ㅡ곽재구, 나무ㅡ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벽바람, 강은교 ㅡ (0) | 2020.12.21 |
---|---|
인다라의 구슬, 박노해 ㅡ (0) | 2020.12.18 |
수학은 정말 싫어, 김철순ㅡ (0) | 2020.12.16 |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 유이우ㅡ (0) | 2020.12.15 |
장만옥이라는이름에 대하여, 천수호 ㅡ (0) | 2020.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