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정든 유곽에서, 이성복 ㅡ 본문

정든 유곽에서, 이성복 ㅡ

난자기 2021. 5. 1. 20:18

 

1

누이가 듣는 음악音樂 속으로 늦게 들어오는

남자男子가 보였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내 음악音樂은

죽음 이상으로 침침해서 발이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잡초雜草 돋아나는데, 그 남자男子는

누구일까 누이의 연애戀愛는 아름다워도 될까

의심하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목단牧丹이 시드는 가운데 지하地下의 잠, 한반도韓半島가

소심한 물살에 시달리다가 흘러들었다 대목伐木

당한 여자女子의 반복되는 임종臨終, 병病을 돌보던

청춘靑春이 그때마다 나를 흔들어 깨워도 가난한

몸은 고결하였고 그래서 죽은 체했다

잠자는 동안 내 조국祖國의 신체를 지키는 자는 누구인가

일본日本인가, 일식日蝕인가 나의 헤픈 입에서

욕이 나왔다 누이의 연애戀愛는 아름다워도 될까

파리가 잉잉거리는 하숙집의 아침에

2

엘리, 엘리 죽지 말고 내 목마른 나신裸身에 못박혀요

얼마든지 죽을 수 있어요 몸은 하나지만

참한 죽음 하나 당신이 가꾸어 꽃을

보여주세요 엘리, 엘리 당신이 승천昇天하면

나는 죽음으로 월경越境할 뿐 더럽힌 몸으로 죽어서도

시집 가는 당신의 딸, 당신의 어머니

3

그리고 나의 별이 무겁게 숨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혈관 마디마다 더욱

붉어지는 신음呻吟, 어두운 살의 하늘을

날으는 방패연, 눈을 감고 쳐다보는 까마득한 별

그리고 나의 별이 파닥거리는 까닭을

말할 수 있다 봄밤의 노곤한 무르팍에

머리를 눕히고 달콤한 노래 부를 때,

전쟁戰爭과 굶주림이 아주 멀리 있을 때

유순한 혁명革命처럼 깃발 날리며

새벽까지 행진行進하는 나의 별

그리고 별은 나의 조국祖國에서만 별이라

불릴 것이다 별이라 불리기에 후세後世

찬란할 것이다 백설탕과 식빵처럼

구미口味를 바꾸고도 광대뼈에 반짝이는

나의 별, 우리 한족韓族의 별​

 

 

정든 유곽에서 / 이성복

 

정든 유곽에서 / 이성복

20210301 #시라는별 15 정든 유곽에서 - 이성복 1 누이가 듣는 음악音樂 속으로 늦게 들어오는 남자男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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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운오리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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