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꽃이 피는 시간, 정끝별 ㅡ 본문
가던 길 멈추고 꽃핀다
잊거나 되돌아갈 수 없을 때
한 꽃 품어 꽃핀다
내내 꽃피는
꽃차례의 작은 꽃은
빠르고
딱 한번 꽃피는
높고 큰 꽃은
느리다
헌 꽃을 댕강 떨궈
흔적 지우는 꽃은
앞이고
헌 꽃을 새 꽃인 양
매달고 있는 꽃은
뒤다
나보다 빨리 피는 꽃은
옛날이고
나보다 늦게 피는 꽃은
내일이다
배를 땅에 묻고 아래서 위로
움푹한 배처럼 안에서 밖으로
꼬르륵
제 딴의 한소끔 밥꽃을
백기처럼 들어 올렸다
내리는 일이란
단지 가깝거나 무겁고
다만 짧거나 어둡다
담대한 꽃 냄새
방금
꽃핀 저 꽃
아직 뜨겁다
피는 꽃이다!
이제 피었으니
가던 길마저 갈 수 있겠다
ㅡ정끝별, 꽃이 피는 시간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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