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시인의 산문, 고창환 ㅡ 본문
한때 의도적으로 삶의 따뜻함을 지향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또 많은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어떤 삶도 의도적일 수 없다는,
그 우연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는 순간들
사소하고 쓸모 없는 기억들이
온몸 가득 쌓여 있다
조금만 흔들려도
그것들은 일렁인다
길에 비유되는 삶은 진부하다
그러나 모든 길은 삶이다
뒤돌아보면 무엇이 보이는가
한 무더기 구린내 나는 발자국들과 굳어버린 소금 기둥들, 실타래처럼 풀려나간 길들이 어두워지면
몸 속으로 기어들어온다
끝없이 걸어도 닿을 수 없다 잠들어서도 걸어가야 한다
물렁거리는 공기들이 축축해지면, 우두커니 서 있던 나무들이
일렬로 저녁 해에 끌려간다
그 순간
물집 같은 세상이 가라앉는다
그 속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빠져나오고, 어떤 어둠도
이 길을 되돌리지 못한다
어두운 창문들만이 기억하리
저 지친 발자국들
어디로 끌려가는지.
ㅡ고창환, 시인의 산문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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