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마스크와 보낸 한 철, 이상국ㅡ 본문

마스크와 보낸 한 철, 이상국ㅡ

난자기 2021. 9. 16. 11:30

살다 살다 그깟 마스크를 사려고
약국 앞에 줄을 설 줄이야
그래도 고맙다
신통한 부적처럼
우환을 막아줘서 고맙고
속이 다 내비치는 안면을
가려줘서 고맙고
세수를 안 해도 사람들이 모르니까
더 고맙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육이오 동란까지 겪고 또 겪고
살다 살다 마스크 대란이 올 줄이야
저들은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는 벌레 군단
국경도 인종도 가리지 않는
인류 침공에
어벤저스 슈퍼히어로들도 속수무책인데
귓바퀴가 없으면 걸 데도 없는
저 손바닥만 한 천 조각이
지구를 구할 줄이야

모든 화는 입으로 들어온다기에
쓸데없는 말 안 하고
나를 아끼고 남을 존중하며
마스크와 한철 보내고 나니
아무래도 내가 좀 커진 것 같다
나라도 이전의 나라는 아닌 것 같다

 

ㅡ이상국, 마스크와 보낸 한 철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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