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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량역의 새 / 문인수 본문

모량역의 새 / 문인수

난자기 2022. 5. 22. 11:25

 

떠나지 마라, 먼 타관은 춥다
작고 따끈따끈한 널
얼싸안고 여기 이대로 계속
짹짹거리고 싶다

이 농촌 들녘, 간이역 대합실
중앙기둥 윗부분엔
직경 한 뼘 남짓한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
난로 연통 뽑아냈던 자리일 것이다 장작이든 톱밥이든
연탄이든 때며 불기를 둘러싼
몇몇 사람의 손바닥들,
그 가난한 화력으로 밀고 간 시절은 슬픔 몇 섬일까
연기는 다만 장삼이사 사라질 뿐,
그늘 그을린 것 말고는
달리 아무것도 기록하지 못하였다

지금은 역무원도 두지 않은 빈 역사, 가을바람에도
되게 썰렁하다

한때 불을 문 저 또렷한 기억,
새까만 입구가 못내 아깝다
나는 저 입 다문 적 없는 모음 깊이
무슨 새 한 쌍을 슬쩍,
속닥하게 들여놓고 싶다
더 이상 누구 떠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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