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그 샘 본문
네 집에서 그 샘으로 가는 길은
한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이면 물 길러 가는
인기척을 들을 수 있었지요
서로 짠 일도 아닌데
새벽 제일 맑게 고인 물은
네 집이 돌아가며 길어 먹었지요
순번이 된 집에서
물 길어 간 후에야
똬리 끈 입에 물고
삽짝 들어서시는 어머니나
물지게 진 아버지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집안에 일이 있으면
그 순번이 자연스럽게
양보되기도 했었구요
넉넉하지 못한 물로 사람들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던
그 샘가
미나리꽝에서는 미나리가 푸르고
앙금 내리는 감자는 잘도 썩어
구린내 훅 풍겼지요
ㅡ함민복, 그 샘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