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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 / 라스 폰 트리에 /백난작

난자기 2016. 2. 13. 23:57

 

 

멜랑콜리(melancholy)의 사전적 의미는 (장기적이고 흔히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비애]라 정의 된다

 

이 시대에 에로스적 사랑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에로스의 종말"(한병철)에 의하면  - 이영화는 이 책에서 소개받았음-

오늘날 사랑의 위기를 초래하는 이유는 모든 삶에 영역에서 타자의 침식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고, 이와 아울러 자아의 나르시시스트화 경향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영화는 2장으로 구성되어있는데


1장 "저스틴"은 주인공 저스틴의 결혼식과 얽히어 사건이 전개된다저스틴은 어느 광고회사의 유능한 카피라이터였다언니 클레어의 성화로 썩 내키지 않는 결혼을 하게 된듯한 느낌이 들었다언니의 남편은 처제를 위해 18홀 골프장이 달린 대 저택에서 호화로운 결혼식을 함으로써 자기의 재력과 처제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자비심을 과시하려는 것 같았다하객들도 두 부부의 행복을 축복하고 이후  맛난 음식을 즐기며 밤늦도록 춤과 파티가 이어진다저스틴은 언니 부부의 호의와 하객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그러한 자신이 자신이 아님을 느낀다결혼식 내낸 뭔가 모를 부자연스러움, 강박감이 흐르고 저스틴은 마침내 스스로 소진되어 버리고자기세계를 잃어 버린듯 체념한다결국 신랑과 하객은 떠나고 결혼식은 엉망이 된다

 

 

 

 

 

생의 춤(143x208cm 캔버스에 유채 1925 ⓒ The Munch Museum / The Munch-Ellingsen Group / BONO, Oslo 2014.)


 

 

절규 (유채 /91×73.5cm/1893년작) 뭉크(Munch, Edvard/1863~1944/노르웨이)

 

 

두 친구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고 불현듯 우울함이 엄습했다.
하늘이 갑자기 핏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죽을 것 같은 피로감에 멈추어 서서 난간에 기대었다.
검푸른 협안에 마치 화염 같은 핏빛 구름이 걸려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고 나는 혼자서 불안에 떨면서 자연을 관통하는

거대하고 끝없는 절규를 느꼈다.”

 

 



결혼식장의 분위기와 저스틴의 내면은 뭉크의 "생의 춤" 과 "절규"로 오버랩 된다

 

"안락함과 나르시시즘적 만족외에는 어떤것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사랑은 종말을 고한다

에로스는 타자를 타자로서 경험할 수 있게 해 주고 이로서 주체를 나르시시즘의 지옥에서 해방시킨다

에로스를 통해 자발적 자기부정과, 자기비움의 과정이 시작된다" 

 - 에로스의 종말 中에서 / 한병철 -

 

 

트레에 감독은 후기자본주의 산업사회를  볼때

개인을 성과주체로서 자기의 노예가 되게 만들어 스스로 소진되어갈 수 밖에 없는

그래서 스스로를 자기최면으로 생산력을 독려하게 만드는 현대판 시지프스들을 만들어 낸다고 고발하고

그런 사회에서 자아의 주체는 한없는 나르시시즘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타자를 소멸시켜

결국 자기속에서 침몰하고 익사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2막 "클레어"는  사막같은 현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말해주는 것같다

결혼식날 언니 클레어의 저택에서 밤하늘에 붉게 반짝이는 별을 발견하는데 이별은 흉성임이 드러난다

멜랑콜리아는 재앙을 시작하는 흉성이기도 하고 구원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 별은 수일내 지구와 충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언니 클레어는 불안한 나날속에 죽음앞에 전전긍긍하는 반면

저스틴은 아토포스적인 흉성과의 충돌을 더 없이 갈망하는 듯하다

별이 지구와 점점 가까워지자 역설적이게도 저스틴은 임박한 죽음앞에서 더욱 살아나게되고

나르시시즘의 감옥에서 해방되어 언니 클레어와 그녀의 아들을 따듯하게 보살핀다

우울증 환자였던 저스틴이 사랑할 줄 아는 여인으로 변모해가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결국 완전한 타자인 흉성의 칩입과 이를 받아들이는 자기부정, 자기비움의 과정으로 승화되어

그 지긋지긋한 나르시시즘의 지옥과 우울증에서 구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또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그랜트헨의 구원과 교차되는 것같다

 

 

 

 

 

 


5 1일 전야, 발푸르기스의 밤이 끝날 무렵, 파우스트는 감옥에 갇힌 그레트헨을 발견하고 메피스토펠레스를 책망하며 감옥에 잠입한다.형리를 기다리며 불안에 떨고 있던 그녀는 파우스트-하인리히의 등장에 열광하지만 탈옥하자는 그의 권유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도망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그들이 절 노리고 있을 텐데요. / 구걸한다는 건 정말 비참한 일이에요. / 게다가 양심의 가책은 어떡하고요? / 낯선 고장을 떠돌아다니는 건 또 얼마나 비참한 일 인가요. / 결국 그들이 절 붙잡고 말 텐데!”보다시피 그레트헨이 도주를 거부하는 것은 비단양심의 가책”, 즉 죄책감 때문만은 아니다. 어떻든 그레트헨은 죽음을 택함으로써 오히려 구원받는다. 그리고 2부의 마지막에속죄하는 한 여인이 되어 파우스트의 구원과 부활의 순간을 함께 한다.

마르가레테(그레트헨) : 전 어머니를 죽였고,
우리 아기를 물 속에 빠뜨렸어요.
그 애는 당신과 제게 내린 선물이 아니었던가요?
당신에게도 말예요. 정말 당신인가요? 전 믿을 수가 없어요.

파우스트 : 제발 정신 좀 차려요!
한 걸음만 나가면 자유롭단 말이오!

메피스토펠레스 : (파우스트에게) 갑시다! 가요 !아니면 그 계집과 함께 내버려두겠소.
마르가레테 :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아버지시여! 절 구원하소서!

메피스토펠레스 : 그녀는 심판받았소!
목소리( 위로부터) : 구원받았노라!    

 

 

그레트헨은 파우스트와 사랑에 빠져 어머니를 죽이고 오빠를 죽게하고 아이까지 죽음으로 몰아간다

그 죄책감에 마침내 미쳐버린다(저스틴이 닫혀 버린 세계에서 우울증환자가 된다)

영아살인죄로 감옥에 갖힌 그녀.  파우스트가 그녀를 탈출시키고자 하나 단호히 거부한다(저스틴도 안락한 세계와 타협을 거부한다)

마지막 선택의 길에서 그녀는 최고의 자기부정과 무한한 자기체념으로 신에게 의지하며(아버지여! 저를 구원하소서!)

끝내 구원의 길에 들어 서게 된다

 

저스틴의 구원의 방법도 이와 동일하다

아토포스적 타자에 대한 부정성을 받아들이고 그 통로로 소통함으로써 에로스의 근원 도달하는 것이다

즉 파우스트의 그레트헨이 의지했던 "신의 자리"에 "타자"를 병치함으로 자발적인 자기부정과 자기비움이 이루어지고

스스로 나르시시즘의 지옥에서 탈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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