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구포역에서 / 백난작 본문
구포발 서울행 무궁화호 열차
30년전 기억이
레일을 탄다
차창밖 어둠속으로
오래된 시간들이 떠다닌다
무궁화호 2,500원
텅빈 주머니
구포역 벤치에 신문보는 아저씨
그 젊은 아저씨
5,000원 꿔주던 안경끼고 조그만 아저씨
전화번호를 물어봐도 대꾸도 없이
내가 오히려 멋적어
돈만 쥐고 뒤돌아 뛰었던
그 곳 구포역 광장
열차에 몸을 싣고서야 웃었지
남은 2,500원에 설레던 구포역 플랫폼
삼랑진역 불빛이
잊고 있던 시장기를 깨운다
대구역 도착해서 먹을
유부기름기 잔뜩 머금은 뜨끈한
냄비우동 500백원
솔 담배 500원
그래도 1,500원 남는다
기차는 사정없이 어듬을 꿰뚫고 달린다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묘한 흥분에 가실 무렵
기차는 밀약역을 훌쩍 지난다
"우리 열차 잠시후 청도역에 도착하겠습니다"
안내방송에 화들짝 선잠이 달아난다
열차 문이 열리자 찬 바람이 얼굴로 쏱아지고
통로사이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찬 바람을 끌고 다니며
자리를 찾아 앉는다
씨피링꺼커꺼쿠쿠쿵
밤이 깊어질수록 기차소리 요란하다
기차길옆 오막살이 아기는 잠을 잘자야 할텐데
구포역 아저씨는 광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누가 그 자리에 아저씨를 보낸것은 아닐까
아니, 우연일거야
바람에 날리던 꽃씨가 어느 집 정원에 내려앉아
꽃을 피우는 것처럼
경산을 지나고
대구역에 포장마차에
기름기 지긋이 머금은
유부가 면발위로 떠다닌다
쑥갓향이 정신을 깨운다
오늘 밤에는 안경낀 조그만 아저씨,
구포역 아저씨
별처럼 하늘에 떠 있다
ㅡ구포역에서, 백난작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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