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도척 본문
춘추전국시대 도척이라는 대도(大盜)가 있었는데 한날은 그의 부하 중 하나가 물었다.
사마천은 세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역사서 중 하나인 <사기(史記)>를 썼다. 그 중에서도 백미로 알려진 <사기열전>은 <백이열전>으로부터 시작한다.
백이열전은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정벌했을 때 고죽국의 왕족인 백이와 숙제가 “반역자의 녹은 받고 싶지 않다”고 하고 수양산에서 고사리 따 먹으면서 결국 굶어 죽는다는 슬픈 이야기다. 백이와 대비되는 인물로 도척이 나오는데, 도척은 수천 명을 끌고 다니면서 사람을 쉽게 죽이고 내장을 꺼내 먹을 정도로 잔인한 짓을 일삼은 인물이다.
사마천은 이 대목에서 필생의 질문을 하나 던진다. 백이는 몸을 닦고 수양을 닦아도 단명하고, 도척은 천하의 악질이면서 천수를 누렸을까? 하늘은 있는가, 하늘은 과연 옳은가? 착한 일을 하면 과연 상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가? 그럼 왜 도척은 벌을 안 받았는가.
이것은 사마천 자신의 처지가 반영된 절박한 질문이기도 했다.
당시는 한나라 무제 시절이었는데, 이릉이라는 용맹한 장수가 있었다. 참 불행한 운명을 타고 났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이릉 장군은 한나라 북쪽을 괴롭히던 흉노라는 오랑캐와 싸우다가 적진 깊숙이 들어갔고, 흉노족에게 포위돼 중과부적으로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다.
이를 두고 간신과 호사가 신하들은 이릉을 비난했지만, 사정을 다 알고 있었던 사마천은 이릉의 처지를 간곡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사마천의 태도에 발끈한 무제는 사마천에게 당시 사형에 버금가는 중형인 궁형(거세형)을 내린다. 사마천이 불명예를 무릅쓰고 목숨을 연명한 까닭은 <사기>를 쓰기 위해서라고 고백했다. <사기열전>의 서두에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마천이 스스로 마지막 편인 <태사공 자서>에서 답한다. 한 가지 질문을 평생 안고 있었다는 뜻이다.
“옛날 서백(주나라 문왕)은 유리에 갇혔기 때문에 <주역>을 풀이했고, 공자는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춘추>를 지었으며, 굴원은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 <이소>를 지었고, 좌구명은 눈이 멀어 <국어>를 남겼다. 손자는 다리를 잘림으로써 <병법>을 논했고, 여불위는 촉나라로 좌천되어 세상에 <여람(여씨춘추)>를 전했고, 한비는 진나라에 갇혀 <세난>, <고분> 두 편을 남겼다. <시> 300편은 대체로 현인과 성인이 발분하여 지은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에 울분히 맺혀 있는데, 그것을 발산시킬 수 없기 때문에 지나간 일을 서술하여 앞으로 다가올 일을 생각한 것이다.”
– 태사공 자서 (사기열전 마지막 부분)
사마천은 자신의 불행이 착한 자는 복을 받고 악한 자는 벌을 받는 것처럼 단순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 현실도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그저 마음을 다해서 마음을 얻으면 그뿐이다.
'닭이 울면 일어나 부지런히 선을 행하는 사람은 순임금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고
닭이 울면 일어나 부지런히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은 도척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순임금과 도척의 차이는 다른것이 아니다.
이익을 추구하는가 선을 추구하는가의 차이이다 - 맹자, 진심 상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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