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시 파는사람 / 이상국 본문
젊어서는 몸을 팔았으나
나도 쓸데없이 나이를 먹은데다
근력 또한 보잘 것 없었으므로
요즘은
시를 내다 판다
그런데 내 시라는 게
또 촌스러워서
일 년에 몇 편쯤 팔면
잘 판다
그것도 더러는 외상이어서
아내는 공공근로나 다니는 게
낫다고 하지만
사람이란
저마다 품격이 있는 법
......
사람들은 내 시의 원가가
만만찮으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사실은 우주에서 원료를
그냥 퍼다 쓰기 때문에
팔면 파는대로
남는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서다
그래서
나는 죽을 때까지
시 파는 집
간판을 내리지 않을 작정이다
ㅡ이상국, 시 파는 사람ㅡ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서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음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 이상국, 국수가 먹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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