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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다 / 이영광 본문

나는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다 / 이영광

난자기 2016. 10. 19. 12:24

십육 년째 다니는 단골 만화방에 왔다 땟국 흐르는 노숙 직전의 얼굴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심야 오천 원 라면 삶은 달걀 짜장면 볶은밥 이제 담배는 안 되고
이틀씩 사흘씩 짐짝처럼 코 골며 뒤척이는 날품팔이들 실업자들 주정뱅이들 거의 바닥이구나 싶은 감정이 사무칠 때면 찾던 나의 응급실
이곳만큼 날 잘 버려주던 곳이 없었다
앞이 안보이는 나를 똑똑히 보려고 스며들었다가 검은 링거를 수혈받고
퉁겨져 나오면 그래봤자 그렇고 그런 뒷골목이지만, 이렇게 살아선 안 된다고
아니 도대체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다고
중얼거리곤 했다
이곳만큼 나를 잘 받아주던 곳이 없었다 잘 펴주던 곳이 없었다
바닥을 만나야 내 바닥이 나타난다
황폐한 것,
막막한 것이
인간을 수렁에서 건져준다

ㅡ이영광,
나는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다
중에서ㅡ




바닥
만나는 일은
나 비추는 거,

나로출발해서
너에게로가고
이젠
우리속이지우리그쟈
아즉도
뭔진모르지만

허연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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