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국어선생은 달팽이 / 함기석 본문
당나귀 도마뱀 염소,
자 모두 따라해!
선생이 칠판에 적으며
큰소리로 읽는다
배추머리 소년이
손을 든 채 묻는다
염소를 선생이라 부르면
왜 안 되는 거예요?
선생은 소년의
손바닥을 때리며 닦아세운다
창 밖 잔디밭에서
새끼염소가 소리친다
국어선생은 당나귀
국어선생은 도마뱀
염소는 뒷문을 통해
몰래 교실로 들어간다
선생이
정신없이 칠판을 쓰며
중얼거리는 사이
염소는
아이들을 끌고
운동장으로 도망친다
아이들이
일렬로 염소꼬리를 잡고
행진하는 동안
국어선생은 칠면조
국어선생은 사마귀
선생이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소리친다
당장
교실로 들어오지 못해?
이 망할 놈들!
아이들은 깔깔대며
더욱 큰 소리로 외쳐댄다
국어선생은 주전자
국어선생은 철봉대
염소는
손목시계를 풀어
하늘 높이 던져버린다
왜 시계를 던지는 거야?
배추머리가 묻는다
저기 봐,
시간이 날아가는 게 보이지?
아이들은
일제히 시계를 벗어
공중으로 집어던진다
갑자기 아이들에게
오전10시는 오후4시가 된다
아이들은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선생이
씩씩거리며
운동장으로 뛰쳐나온다
그 사이,
운동장은 하늘이 되고
시계는 새가 된다
바람은 의자가 되고
나무들은 자동차가 된다
국어선생은 달팽이!
국어선생은 달팽이!
하늘엔
수십 개의 의자가 떠다니고
구름 위로 채칵채칵
새들이 날아오른다
구름은
아이들 눈 속으로도 흐르고
바람은 힘껏
국어책과 선생을
하늘꼭대기로 날려보낸다
ㅡ함기석, 국어선생은 달팽이ㅡ
자유,
불 지르고 싶다
그냥
불놀이 하고 싶다
해방불!
불이야, 아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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