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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한 판 / 고영민 본문

계란 한 판 / 고영민

난자기 2016. 10. 18. 00:30

대낮,
골목에 처박혀 시를 쓰다가
문 밖
확성기 소리를 엿듣는다
계란...(짧은 침묵)
계란 한 판...(긴 침묵)
계란 한 판이, 삼처너언계란
...(침묵)...계란 한 판
이게 전부인데,
여백의 미가 장난이 아니다
계란, 한 번 치고
침묵하는 동안 듣는 이에게
쫑긋, 귀를 세우게 한다
다시 계란 한 판,
또 침묵
아주 무뚝뚝하게
계란 한 판이 삼천 원
이라 말하자마자 동시에
계란, 하고 친디
듣고 있으니
내공이 만만치 않다
귀를 잡아당긴다
저 소리,
마르고 닳도록 외치다
인이 박여 생긴
생계의 운율
계란 한 판의 리듬
쓰던 시를 내려놓고
덜컥,
삼천 원을 들고 나선다

ㅡ고영민, 계란 한 판ㅡ





동해물,
마르고 닳도록 부르다
바우같은 운율로
마르고 닳도록
외치는
새벽별 바라보네

쉼표,
하얀 달걀가튼 아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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