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고비의 고비 / 최승호 본문
고비에서는
고비를 넘어야 한다
뼈를 넘고 돌을 넘고 모래를 넘고
고개 드는 두려움을
넘어야 한다
고비에서는
고요를 넘어야 한다
땅의 고요 하늘의 고요
지평선의 고요를 넘고
텅 빈 말대가리가
내뿜는 고요를 넘어야 한다
고비에는 해골이 많다
그것은 방황하던
업덩어리들의 잔해
고비에서는
없는 길을 넘어야 하고
있는 길을 의심해야 한다
사막에서 펼치는 지도란
때로 모래가 흐르는
텅 빈 종이에 불과하다
길을 잃었다는 것
그것은
지금
고비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ㅡ최승호, 고비의 고비ㅡ
사막에서
새벽별 쫒는다
고비에서
고비를 헤아린다
모래틈새
증발하는 나는
그림자가 없다
‘하긴 얼마나 질긴 살을 뼈에서 뜯어내며 씹어댔던가. 아직 남아 있는 이빨들, 이빨 빠진 자리에 박히는 인공이빨들, 지옥의 이빨들이 끊고 씹고 부수도록 고안된 것이라면 천국은 이빨 없는 존재들이 모여 살도록 만들어진 것일까.’(‘이빨’ 중)
게 / 최승호
어기적거리는, 엉성한, 눈을 흘기는 문체로 써야겠다. 아무래도 나는 순하고 착한 노인은 못될 것 같다. 그렇다고 일부러 독짓는 늙은이가 되겠다는 말은 아니다, 육신은 느리게 늙어가고인생은 빨리 썩어간다. 아마 죽은 뒤에는 우울했던 해골도 이빨이 빠진 채 웃으리라. 이런 말도 아직은 혀 한 조각이 뭉쳐져 있어 하는 것이다.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에 걸려든 것 같은 일상적 삶을 게요리전문점 수족관의 게들도 경험한다. 그들도 몸을 팔려고 대도시로 왔다. 누가 내 몸을 사서 분해하거나 해체해도 그 왕성한 식욕을 원망하지 않겠소! 게들은, 왕게든 털게든 대게든, 늠름하게 최후를 맞이하겠다는 자세로 수족관 유리 밖을 물끄러미 내다본다. 지금은 바퀴들이 지나간다. 구름은 흘러오고 사람들은
흘러가고, 사람 외에는 보이는 영장류가 없다. 그러나 밖으로 끌려나온 뒤에 게는 일종의 괴상한 광물덩어리에 불과하다.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보이는 것도 없고 보는 자도 없고 도대체 뭐가 뭔지, 과거에 참으로 게였는지, 텅 빈 껍데기가 현재인지, 미래는 이제 없는 건지, 이게 그 게 찌꺼기인지, 저게 그 게의 잔해인지, 모든 게 가까인지 헛것인지 뒤죽박죽 너절하게 쓰레기통 속으로 들어간다 해도, 그래도 영靈 믿었던 게는 다리가 없어도 어기적 거리고, 눈이 없어도 가야 할 길을 보며, 마침내 바다로 돌아간다고 말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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