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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남자가 되어 / 김사인 본문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남자가 되어 / 김사인

난자기 2016. 12. 6. 15:07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그 처자
발그라니 언 손에 얹혀
나 인생
탕진해버리고 말겠네
오갈 데 없는 그 처자
혼자 잉잉 울 뿐 도망도 못 가지
그 처자 볕에 그을려
행색 초라하지만
가슴과 허벅지는 소젖보다 희리
그 몸에 엎으러져
개개 풀린 늦잠을 자고
더부룩한 수염발로 눈곱을 떼며
날만 새면 나 주막 골방
노름판으로 쫒아가겠네
남는 잔이나 기웃거리다
중늙은 주모에게
실없는 농도 붙여보다가
취하면 뒷전에 고꾸라져
또 하루를 보내고
나 갈라네, 아무도 안 듣는
인사 허공에 던지고
허청허청 별빛 지고 돌아오겠네
그렇게 한두 십년 놓아 보내고
맥없이 그 처자 몸에
아이나 서넛 슬어놓겠네
슬어놓고 나 무능하겠네
젊은 그 여자
혼자 잉잉거릴 뿐 갈 곳도 없지
아이들은 오소리 새끼처럼
천하게 자라고
굴속처럼 어두운 토방에
팔 괴고 누워
나 부연 들창 틈서리
푸설거리는 마른 눈이나 내다보겠네
쓴 담배나 뻑뻑 빨면서
또 한세월 보내겠네
그 여자 허리 굵어지고
울음조차 잦아들고
눈에는 파랗게 불이 올 때쯤
나 덜컥 몹쓸 병 들어
시렁 밑에 자리 보겠네
몇해고 애를 먹어
여자 머리 반쯤 셀 때
마침내 나 먼저 술을 놓으면
그 여자 이제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리
나 피우던 쓴 담배 따라 피우며
못 마시던 술도 배우리 욕도 배우리
이만하면 제법 속절없는
사랑 하나 안 되겠는가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ㅡ김사인,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남자가 되어ㅡ



그려 고마 정신 차리라
이 조선 남정네야
지금이 어떤 시댄데
감금과 사육과 착취의 노스텔쟈냐
지금 이 땅엔 순종을 미덕으로 여기는 나어린 처녀는 멸종했다
그것을 향수처럼 노래하는 염치없는 족속아

 - 作戇 -


복숭아 두 개로 용사 셋을 죽였다는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의 고사가 있다.

세 명에게 복숭아 두 개를 주면서 공이 있는 사람이 가지라고 했는데, 서로 자신의 공을 내세우며 복숭아를 다투다가 결국 부끄러움에 자결을 했다는 내용이다. 비록 교묘한 계략으로 상대를 제거한다는 고사지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적어도 그들처럼 명분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낄 만큼 염치를 지닌 사람이 요즘 시대에 몇이나 있을 것인가?

지금이야말로 염치의 회복이 시대정신이 돼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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