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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나무마을에 간다 / 최금녀 본문

한겨울 나무마을에 간다 / 최금녀

난자기 2017. 2. 7. 10:35

나무마을로 간다
키가 큰 잣, 리키타, 상수리, 느릅
그 아래
작은 집 한 채씩 짓고 사는
산뽕, 갈메, 산죽, 다릅

이 겨울
나무마을은
하나같이 독한 마음으로
머리털 깍고 선방에 들어갔다

눈도
그 동네 눈은
참선을 한다
나뭇가지에 앉았다가 슬그머니
땅으로 내려와 가부좌를 튼다

깍지 못하는 머리털을 이고
나는
나무마을로 간다

비탈진 쪽으로
뿌리 버팅겨 섰던
뿌리의 등허리, 흙 밖으로
불거졌던 등 시린 나무
이 추위 어덯게 지내는지,
중심은 아직도 탄탄한지

작년 봄,
옆구리 여기저기에
링거 줄 매달고 중환자였던
고로쇠나무,
입춘은 가까워오는데
또 어쩐다?

오늘 눈이나 마음
푸근하게 쏟아져
여린 싹들도 눈이불 다 덮어주고
관자놀이에 심줄 돋은 뿌리와
못자국이 험한 고로쇠도
푹 덮어주었으면 좋겠다

선방 나무들도
동안거 해제하고
숲으로 뛰어나와
두 팔 벌리고
하늘이 내려주는
복을 받으며 기뻐하리라

ㅡ최금녀,
한겨울 나무마을에 간다 ㅡ

깊은 골 지나자 보이는 한 줄 등고선
단단한 겨울 나이테!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쌓인 응달에 외로이서서
아무도찾지않는 추운겨울을
바람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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