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공룡뱃속 / 박미영 본문

공룡뱃속 / 박미영

난자기 2017. 2. 7. 11:16

어서 오세요,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공룡 입안은 상쾌하지도 발랄하지도 않다
새해에 대해 사람들이 불안해한다
불안은 욕구충족으로 내달린다
그럴 때 내미는 손, 꽉 움켜쥔다
공룡은 입맛을 다시며 혀로 부드럽게 얼굴을 핥아준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손만 뻗으면 빈곳을 채워줄 물건들이 가득하다
공룡 심장 뛰는 소리에 맞추어 심장도 벌렁벌렁 따라 뛴다
뛰는 속도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것은 별로 상관이 없다
우리의 심장이 멈추어도 공룡 뱃속은 아늑하고 따뜻하다
길은 환하고 밝아 주위에 널려 있는 물건들이 아름답게 빛난다

더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없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아 잠시 두리번거린다
뒷걸음질은 위험하다
수렁은 언제나 뒷걸음질치는 사람을 기다린다
공룡의 내장은 꾸물꾸물 목을 조였다 풀었다 한다
필요없어도 필요한 듯 몇 개 더 씹지도 않고 삼킨다
게워 내고 싶은 순간
목을 조여 오는 힘이
점점 더 강해진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역한 냄새가 훅,
문을 나서기가 두려워 진다
즐거운 쇼핑은 즐거운 하루다
공룡 혓바닥이 쓰윽
자기 똥구멍을 핥을 때
즐거운 인생이 끈적끈적하게
우리를 휘감는다
새해는
공룡 똥구멍에서 뜬다

ㅡ박미영, 공룡 뱃속ㅡ



피테르 브뢰헬 Pieter Bruegel The Elder <The Land of Cockayne> ,1567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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