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소주병 속에도 시간이 흐르고 있다 / 한영숙 본문
지하철 환승역,
아직 뚜껑을 오픈하지 않은
소주병들이 입 출구를
신속하게 빠져나간다
간혹 초미니 스커트를 걸친
병이 흔들리며
통로를 정복하듯 지나간다
함부로 시간을 따라버린
난장 까는 소주병들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닌다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써버린 목숨
졸지에
내부를 모조리 쏟아버린 듯
주둥이를 벌리고 있다
술술
빠져나간
흥건한 시간들
이른 봄비가
늦겨울을 매몰차게 몰아내는
역사 안은 온통 닭 잡는
비린내로 가득 찼다
안경알에 김이 서린다
길이 미끄럽다
ㅡ한영숙,
소주병 속에도
시간이 흐르고 있다ㅡ
흔드네
아니
흔들리네
쓰러진
빈병속,
바람의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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