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우화의 강1 / 마종기 본문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 하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않고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마종기, 우화의 강 1-
유장(悠長)은 길고 오래된ㅡ
이라는 의미다
길고 오래된 것은 인위로 손상시킬 수 없다
그게 애초 사람과 사람이 만든 아주 작은 물길이라 할지라도
그 흐름이 유장한 것이라면 그건 더 이상 사람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것이다
설사 이제 흐려져 그 물길이 어두워도
내 혼을 정화시켜 주지 못하여도
그대가 더이상 싱싱하고 시원하고 고운 사람이 되지 못하여도
강은 그 모든 걸 다품고 그저 유장하게 흘러가는 것이다 .. 박작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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