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무지에 대하여 / 함성호 본문
여기서
핸들을 조금만
오른쪽으로 틀면
그대로 피안이다
도시의 지붕들
위를 날아
긴 포물선을 그리며
추락하겠지
나는
그 포물선의
어느 좌표쯤에서
생의 끈을
놓고 있을까?
살아 있다는 것은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일이다
어두운 터널 속에서
나오면
다시 생은
더 어두운 터널로
나를 채근한다
좌석버스 안에서
죽은 사람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옆자리에서 앉았던
사람들은
그가
자고 있는 줄
알았다고 한다
썩지만 않는다면
죽음도 옆에 두고
친할 만하다
인형에게
말을 건네는 아이들은
살아 있는 죽음을
보고 있다
익사자는
어느 순간 생을
포기하기 마련이다
뻔한 낙관이지만
나는
그 순간에야
무엇이 보일 것 같다
소는 불이 나면
그냥 서서 타죽는다
처음부터 삶은
없었던 것이든가,
아니면
가위에 눌린
꿈의 다른 방식이라는
걸까?
되돌아간다
또, 되돌아간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새로운 것일까?
ㅡ함성호,
무지에 대하여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