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껍질경전 / 이진 본문
태풍에 발목 부러진
소나무 한 그루
생의 끈을 놓지 않고
와불처럼 누워 있다
껍데기는 가라*
누가 그랬던가
제 속살
다 빼앗겨버린 채
껍질만으로 가까스로
땅속 뿌리
한 가닥 잡고 있다
나이테 잃은 소나무
제 나이도 잊고
상처 위에
켜켜이 상처를 쌓아
두툼해진 접목
줄기도 껍질도 아닌
껍질줄기가 되었다
껍데기에 매달린
생의 내력이
저 와불에 새겨져 있다
길게 펼친 껍질경전을
오며 가며 사람들이 읽는다
거친 흘림체로 씌어진
끈질긴 목숨
죽어서 다시 사는 나무
ㅡ이진, 껍질경전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