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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 / 문태준 본문

처서 / 문태준

난자기 2019. 8. 27. 17:37

얻어온 개가 울타리 아래
땅그늘을 파댔다
짐승이 집에 맞지 않는다 싶어
낮에 다른 집에 주었다
볕에 널어두었던 고추를 걷고
양철로 덮었는데
밤이 되니 이슬이 졌다
방충망으로는
여치와 풀벌레가
딱 붙어서 문설주처럼
꿈적대지 않는다
가을이 오는가,
삽짝까지 심어둔 옥수숫대엔 그림자가 깊다
갈색으로 말라가는
옥수수 수염을 타고
들어간 바람이
이빨을 꼭 깨물고
빠져나온다
가을이 오는가,
감나무는 감을 달고
이파리 까칠하다
나무에게도 제 몸 빚어
자식을 낳는 일 그런 성 싶다
지게가 집 쪽으로 받쳐 있으면
집을 떠메고 간다기에
달 점점 차가워지는 밤
지게를 산 쪽으로 받친다
이름은 모르나 귀익은 산새소리 알은채 별처럼 시끄럽다

ㅡ문태준, 처서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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