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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기일기
늦은 아침 갑자기 눈이 뜨인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던가 어젯밤 나를 놓아버린 시간들은 구름으로 떠다니고 새장 밖에는 새의 날개가 퍼득이는데 나는 여기서 모이를 쪼고 고개들어 하늘만 멍 하니 쳐다본다 그 하늘은 터널처럼 휑하다 오늘은 아버지의 땅에 가서 집을 짓는게 좋겟다 어머니가 웃으실거야 땅을 파고 씨앗을 심고 나무와 풀과 돌들을 부르자 사랑도 부르자 어화둥둥 내사랑 맷새 둥지에 뻐꾸기 새끼도 이쁜 내사랑 옷나무 독기 서린 가지도 찔레꽃 날 선 가시도 어화둥둥 내사랑 뱀의 독니도 빗물에 녹아 흐른다 아직 설익은 시린 사과를 위해 과수윈도 만들면 좋겠다 바둑이가 과수원 한 켠에 오줌을 싸고 제 땅이라고 우긴다 웃긴다 바둑이는 우기는 것이 웃긴다는 것을 모르는것 같다 구름이 걷히자 햇살도 웃는다
하루를 살아도 온 세상이 평화롭게 이틀을 살더라도 사흘을 살더라도 평화롭게 그런 날들이 그날들이 영원토록 평화롭게 ㅡ김종삼, 평화롭게ㅡ 참 영혼이 아름답다 눈으로 읽어도 소리내어 읽어도 그는 평화롭다 빛이 밝은 광명역이 오히려 허하네 1시간 열차를 기다리다 이제 내려간다 하루를 살아도 평화롭게.. 만인과 만인의 투쟁속에 평화가 깃들기를ᆢ 투쟁하면서 평화롭게 사는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인간은 동전의 앞뒤 같은 양면성을 교활하게 은폐하고 살아가는 이중인격자인가? 사자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생존을 위한 생물학적 본능을 엿볼수있다 사자들은 집단을 이루어 생활하는 고양이과 동물이다 사자집단에는 소수의 숫사자들과 사냥과 번식을 위해 다수 암사자들이 있고 그들에게서 생산된 새끼들이 있다 숫사자는 그 무리를 이끄는 리더..
어느 늦은 가을 길가에 낙엽들이 쓰려져 웁니다 눈물이 흘러 온몸을 적십니다 스스로 눈물에 녹아 땅속으로 스며들어 거름이 됩니다 지하방에 물건을 가지러 가듯이 자연스럽게 말입니다 죽음이 없으니 당연히 묘비는 없습니다 꽃으로 있었던 세상과 낙엽으로 뒹구는 세상은 다르지 않습니다 비자없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국경의 경계선입니다 그 경계에는 언제나 치열함이 있고 환희와 애가가 있습니다 알고보니 이번에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번 그러했습니다 수천, 수만의 이름없는 들꽃들도 그러했습니다 천개의 종이학을 접습니다 하나, 둘 , 셋... 심장에 한방울씩 피가 모입니다 머리부터 천천히 심장의 고동이 전해 집니다 발끝의 모세혈관이 잔뜩 부풀어 오릅니다 깃털들이 외칩니다 이제 날개를 펼치라고 천마리의 학이 날아오릅니다 종..
달이 차오르고 파도가 멀어지자 갯벌속 망둥어 한마리 머리를 치켜들고 기도를 한다 오늘도 일용한 양식을 달라고 망둥어야! 너는 기어야지 배로 땅을 문지르며 기어가야지 너의 아버지들도 수만년 동안 흙구덩이 속에서 그렇게 지내왔어 흙수저로 밥을 먹고 온 세상 갯벌을 깨끗이 청소하며 푸른 바다를 더욱 푸르게 가꾸었지 너 없는 이곳은 상상할 수가 없어 그만큼 너는 소중해 너는 물고기가 아니야 네 짧고 뭉턱한 지느러미를 봐 헤엄치라고 있는게 아니야 불편하겠지만 기어다닐 때 쓰도록 해 너는 악어도 더욱 아니야 네 짧고 뭉턱한 지느러미를 봐 걸어다니라고 있는게 아니야 불편하겠지만 잠시 헤엄칠 때 쓰도록 해 그러니 너무 멀리 가지도마 이곳을 벗어나면 죽음뿐이야 여기가 제일 행복할 거야 내가 지켜줄께 나에게는 네가 너무 ..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타다만 장작이 하얀뼈를 드러내고 마당에 누워배웅도 하지 않았어 레테의 강을 건너살찐 암고양이 네로를 보았어초록 눈동자를 시계바늘처럼 굴리며 기억을 씹고 있는 중이었어 사마르칸트의 모래언덕을 넘고 있을때뜨거운 모래알이 춤을 추며 유혹해 왔어옷을 하나씩 벗어 던져 주었지마지막 옷까지 벗으니 낙타의 야릇한 웃음을 웃었어쿵쿵거리는 심장을 던져주고 모래속으로 숨어 심장이 없는 채로 야릇한 웃음을 흉내내 웃어 보았어 너에게로 간다너에게로 간다 그 좁고 좁은 간극그 사이에 나비가 되고 싶은누에가 누워있다 ㅡ사이, 백난작 ㅡ
어머니가 된장국을 끓인다 구수한 된장국 밥상위에 올려 놓고 밭에 나가 콩을 심는다 땅이 풀과 씨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로 가득해 질 때쯤 콩밭에 집을 짓고 몸은 흙이 되고 물이 되고 바람이 되어 누웠다
해가 부른다 어머니가 잃어버린 아이를 찾듯 뜨거움으로 나너를 부른다 고단한 여름의 끝 밤도 뜨겁다 몸은 바람에 흩날려 어느새 갈매기보다 높이 날아 오른다 기체가 되어 느끼는 이 자유로움 어머니의 자궁속을 헤엄치 듯 평온하다 다시 물질로 얽매이고 싶지 않다 날자, 날자, 날아오르자 어딘지도 모르는 세계라도 좋다 꿈속이어도 좋다 천둥소리에 잠이 깬다 먹구름이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다우두둑 우두둑몸이 다시 빗물로 태어나고 곧 깊이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추락한다 끝이 말리기 시작한 잎새들은 자기위에 시체처럼 쓰러지는 나를 온 몸으로 받아낸다 몸의 파편들이 서로 뒤엉킨다 비탈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제 날개는 없다 내가 있는 곳은 땅의 가장 낮은 곳이다 기어서 가자 낮은 곳, 더 낮은 곳 낮지만 가장 넓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