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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기일기
狂馬광마여 그 잘난 양심으로 포장하고 잘 차려진 밥상도 걷어차고 거북등짝 같은 땅을 마구 헤집어 놓고 마른 흙 한줌 삼키고 그대 어찌 홀로 미치도록 뛰어 갔나요 권태로왔나요 변태가 되고 싶었나요 창조를 할려고요 그런데, 혹시 아세요 혁명은 미친짓이라는 것을 사라가 비웃고 있잖아요 狂馬광마여 그대의 살을 파고 뼈를 깍는 고뇌가 고드름처럼 어깨에 매달리고 광란의 질주가 절벽의 끝에 다다랐을 때 죽음보다 무서운 외로움 앞에 고개를 떨구었지요 그리고 절벽 아래로 질주했지요 그러나 외로워마세요 절벽밑에 사라가 있어요 그대의 아름다운 洛花낙화를 가슴으로 받아내는 강물이 담담히 흐르고 있어요 -狂馬광마에게, 백난작-
나이 오십이 되는 이 날까지 밤마다 결심하는 생각들을 하나라도 붙들어 세우지도 못하고 죽어도 변치 않을 것이라 맹세했던 신념도 풍선보다 가벼이 날려버리고 세상을 품겠다고 나서다 길을 잃고 금광산에 붙잡혀 막장에서 밤을 새우길 몇 번이던가? 바람같은 인생길에 해는 저물어 가는데 서릿발같이 귀밑은 하얗게 물들어 가는데 아직도 아침에 세 개를 저녁에도 세 개라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비굴함이 시체위를 스물스물 기어다니는 바퀴보다 역겁다 나이 오십이 되는 이 날 이후에도 밤마다 또 결심을 하랴 조삼모사 하는 원숭이를 잡으러 가랴 광야에서 말 타고 온 초인을 쫒으랴 이제 내 심장의 고동을 잠시 멈추기로 했다 내일은 심장을 꺼내 절벽위에 매달아 놓고 독수리를 불러 먹이고 내 심장의 위령탑을 쌓기 시작하겠다 거기서 마지..
어린 왕자의 별에는 아주 소박한 꽃이 있었다. 그는 그 꽃을 주의해서 살펴보았는데, 그 꽃은 겸손하지도 않고 자기의 가시 네 개로 호랑이 발톱을 당할 수 있다고 허세를 부렸다. 그래서 왕자는 괴로움을 당했다. 별을 떠나던 날 아침 그는 자기의 별을 깨끗이 챙겨 놓았다. 꽃에 고깔을 씌워 주려고 했을 때도 그 꽃은 자기의 우는 꼴을 보이지 않으려 거만하게 굴었다. 어린 왕자는 일거리도 구하고, 무엇을 배우기도 할 목적으로 여러 소혹성을 찾아 길을 나섰다. 어린 왕자의 별에 사는 그 꽃 소박하지만 거만하기도 하다 어느날 고독이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 외롭지 않니?" 꽃이 대답한다 "그런 걱정 마세요!" "조금 있으면 예쁜 나비가 내 머리위에 사뿐히 내려 앉아 나를 쓰다듬어 줄거예요" 비가 지나갔고 눈이 ..
어젯밤 바람이 구름을 걷어가 버렸다 바람은 어린시절 세발 지전거 패달에 앉아 바퀴가 한 번 두 번 구를때 마다 기억을 두드리고 여름 그 어느 날 마을 앞 개울에서 멱감던 아이가 익사를 하고, 운명이었다 하고 얼굴이 하얀 긴 머리 여자 아이가 전학을 가고, 아버지따라 가야한다 하고 소꼴을 잘 베던 비쩍마른 아이는 서울로 가고, 돈을 벌러 떠났다 하고 어둡도록 같이 놀던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밥먹으러 가야한다 하고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고 기억은 마구 뒤섞이고 찢어지고 달아나고 나를 지우고 삶의 가시가 골수를 찌르고 지난 시간들이 의식 저 너머에 떠다니고 어제는 친구 어머니 장례식장에 가서 영정사진에 대고 꾸벅 두 번 절하고 술을 마셨다 별이 더 또렸해 지고 기억속으로 가는 길 언저리가 밝아졌다 돌이 된..
두꺼비한테 속아서 헌집 주고 새집 못받고 집없이 산다 두꺼비가 천냥 시주하고 백날 기도하면 집이 생긴다고 해서 태백산 꼭대기 정한수 바치고 밤낮으로 기도했는데 태백산 신령이 말하길 원래 집이 없을 팔자니 집없이 그냥 살아 가란다 그래서 민달팽이는 집 없이 벌거벗고 산다 껍질 달팽이가 큰 집을 지고 느릿느릿 지나간다 껍대기는 가라 껍대기는 가라 새벽까지 껍대기는 가라고 소리치다 죽은 소라껍질 속으로 들어가 침묵한다 마침 육지로 올라온 거북이가 소라껍질 속 이방인을 내치더니 조용히 자기 알을 낳는다 ㅡ민달펑이, 난자기- 우리는 성찰하지 못하고 원망할 줄도 모르고 반항할 줄도 모르고 분노할 줄도 모르고 울며보채기밖에 못한다 소라고동속에서 줘꼬리만한 행복에 겨워할뿐 나약하고 나약해져 있는 민달팽이들이다
신이 죽어 떠난 검붉은 하늘에 별들이 총총 박힌다저마다 전설을 가슴에 달고 꿈에 대하여,혁명에 대하여 자랑한다별 하나가 왕관을 쓰고 불빛을 흔든다 밝은 불빛아래 세상은 식어갔다어둠은 구석으로 내몰리고 택시 드라이버가 양화대교를 힘겹게 지난다실직한 50대 남자가 95번째로 난간을 뛰어내린다그는 평소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고 했었다송파의 세모녀가 살았다엄마는 두 딸을 데리고 지구행성을 떠났다그녀가 마지막 남긴 말은 "밀린 집세 70만원 못내서 미안해요" 였다봉천고개 너머 세탁소 옆집 지하방에 80대 할머니는 혼자 산다세상이 싫은지 잘 나오지 않는다할머니가 세상에 나온건 심장이 식은지 한달이 지나서였다 - 내가 사는세상 / 白卵作-
개가 짖는다 달이 어제처럼 동그랗게 제 그림자를 쳐다보고 있는데도 주인 몰래 밥그릇을 찬다 채식주의자도 아닌데 풀만 먹으라고 창자의 벽에는 이미 식물이 뿌리를 박고 광합성을 한다 개는 속이 역겨워 컹컹 짖다가 한움큼 흙을 삼키고는 슬며시 밥그릇을 자기 자리에 갖다 놓는다 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짖는것 뿐이다 -난자기 / 미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