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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난작, "저 집에 언제가요?" ㅡ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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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난작, "저 집에 언제가요?" ㅡ

난자기 2020. 6. 4. 14:04

"선생님 저 집에 언제가요?"
"
코로나 끝나야 가지"
"
코로나 언제 끝나요"
"
글쎄ᆢ"
"
코로나 5월달에 끝난다 ~"
"
그때 안 끝날걸"
"
그럼 6월에는요? "
"
글쎄 그때 돼봐야 알겠는데"
"
왜요?"
"
음 ᆢ 지금 코로나가 너무 많아서 6월에 코로나가 안 끝날 수도 있어
코로나 끝나면 집에 가자"
"
! 코로나 끝나면 집에 간다"

bj는 하루 종일 이런 질문만 하고, 나는 하루 종일 똑같이 저렇게 답변한다
미안하구나, 너에게 거짓말을 해서ᆢ

bj 20대후반의 잘생기고 건강한 청년이다
발달장애라는 멍에만 없었다면 누구나 봐도 늠름하고 전도 양양한 젊음이다
어릴 적부터 앓아온 선천성 자폐가 이 청춘에게 남들이 가는 평탄한 길로 가는 것을 막아 섰다
특이한 제스처와 가끔씩 신음에 가까운 톤으로 알 수 없는 말을 하곤 한다
여자에 대한 과한 관심표현으로 성 도착증 환자 내지 성폭력가해자로 낙인 되어 이 시설 저 시설을

전전하다가 몇 년 전 이곳으로 입소하였다

bj의 부모인들 얼마나 아들의 치유를 바라고 애를 쓰고 노력을 했겠는가

그런 아들이 안쓰러웠는지 bj의 부모님은 그전에는 이따금 집에 데려가서 일주일정도 같이 지내다가 다시 데려오곤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시설 측과 부모님간의 상담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bj가 시설생활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고 부모님들의 경제력도 좋은 편이 아니어서 앞으로는 데려가지 않기로 협의하였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bj는 집에 갈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었고 때마침 코로나가 덮친 것이다
이후 코호트 격리가 있었고 시설 내에서 제한된 활동만 할 수 밖에 없었다.

날이 갈수록 코로나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고 오히려 bj에게 무료함과 함께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부채질하고 있었는지 만나는 선생들마다 집에 언제 가는지 묻기 시작했다.

선생님 코로나 언제 끝나요라는 말은 bj가 하루 중에 하는 말의 전부일 정도였다
"
이제 집에 못 간다" 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선생도 있고 어떤 선생은 올 해에는 코로나가 끝나지 않을 걸하며 약 올리듯 말하기도 했다.

bj는 그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계속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느 날 근무를 끝내고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bj가 앞을 가로막고서는 구걸하듯이 애절하게 물었다
"
선생님 저 집에 언제가요?"
"
코로나 끝나야 가지"
피곤한 나머지 조금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
코로나 언제 끝나요?"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대화에 짜증이 나서
"
언제 끝날지 내가 어떻게 알아" 하고 쏘아붙였다

내가 화를 내자 다소 움츠려 들었지만 자기 할말은 잊지 않았다
"6
월달에 끝나요?"
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서둘러 시동을 걸고 요란하게 시설을 빠져 나왔다

집에 오자마자 피곤을 쓸어낼 요량으로 욕실에서 뜨거운 샤워를 했다
약간의 피로가 가시는 갓 같았다
어제 당직과 일직으로 잠이 모자라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
선생님 저 집에 언제가요" 라는 bj의 질문이 머리에 맴돌았다
지워버리려고 할수록 더 큰 소리로 잠을 저만큼 쫓아 내고 있었다
왜 거짓말을 해야만 했을까?
사실 그대로 말해 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몇 번이고 잠을 뒤적이다가 안되겠다 싶어 불을 켜고 TV를 켰다.

영화채널에서 옛날 영화가 나왔다. 소파에 기대어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 순간

갑자기 제이콥의 거짓말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이 영화는 1974년 폴란드 출신작가 유레크 베커의 작품을 프랭크 마이어 감독이 영화화해 아카데미 최우수외국영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39년 폴란드를 점령한 나치독일군은 로츠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을 재산을 모두 압수 한 채 집단거주지역에 몰아넣고 외부세계와 차단시킨다. 그들은 아우슈비츠에 끌려가 죽임을 당할 때까지 노동을 제공하는 노예로 봉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들 중에는 야콥 하임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독일군 본부 주위에서 우연히 러시아군대가 400킬로밖 인근까지 진격해왔다는 뉴스를 듣게 된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내가 라디오가 한 대 있는데 곧 독일은 연합군에 패배할 것이고 우리는 해방될 거라는 뉴스를 들었다고 말한다
이 말이 퍼지면서 동료들은 매일 밤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고 그는 매일 거짓뉴스를 만들어 동료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지펴준다. 그러다 스스로 불안해진 야콥이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자신은 라디오를 갖고 있지 않으며 동료들에게 전한 뉴스는 거짓말이었다고 털어놓자 다음날 친구는 자살을 하고 만다.

그러자 야콥은 자신이 하는 1그램의 거짓말이 1톤의 희망을 만들어낸다는 것과 그래서 수많은 동료들이 그곳에서 쓰러지거나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bj에게 주어진 현실은 발달장애인 이라는 것과 그로 인해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과

가끔씩 가던 집을 이제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현실들 모두 자신의 과오는 아닐진대,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동안 겪어야 하는 차별과 편견으로 인해 받는 고통은 모든 사회공동체가 성찰하고 개선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한 개인으로 살아가는 삶은 그 자신의 삶의 태도에 따라 많은 변화가 있을 수 있다. .

bj는 자기 앞에 놓여진 현실이 자기 힘으로 거부할 수 없다는 것과 거부할 수 없을 만큼 강한

힘과 싸우는 법을 알고 있는 듯 하다

그 방법은 결코 좌절하지 않고 설사 집에 없더라도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끝까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시지프스가 굴러 떨어진 바위를 끊임없이 다시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듯, “코로나 언제 끝나요?”라는 반복되는 질문은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문제해결방식이며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삶의 과정인 것이다.

어떤 때는 애절하고, 어떤 때는 장난스럽고, 또 어떤 때는 분노에 찬 바람처럼 토해내는 질문들은 그의 한이고 생명인 것을 진작에 눈치 체지 못한 내가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반백이 넘어가는 동안 나의 인생에서 한번이라도 그렇게 집요한 적이 있었던가?

bj는 내일도 "저 집에 언제가요?" 라고 물어올 것이다

코로나가 끝나도 bj는 제2, 3의 코로나를 만들어 낼 지도 모른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결코 쓰러지지 않고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는 생존자가 될 것이다

 

선생님! 집에 언제가요?”

응 코로나 끝나면 바로 갈 거야

질문이 계속되는 한 야콥의 거짓말도 계속 될 것이다

 ㅡ 백난작, "저 집에 언제가요?"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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