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불화덕 / 이병률 본문
바람이 만들어지는 때
그 바람에 마른 문장이
서리와 서리처럼
비벼지는 때
불을 놓고 싶다
굽고 익히고 끓이고 덥힌
불로 하여금
긴히 다시 사는 법을
알고만 싶어서
새가
바람을 공부하지 않고
어찌 날기를 바랄 수
있단 말인가
저녁을 먹지 않으려는
저녁에
누군가 마중을
나온다는 말은
얼마나 고독을
꺼뜨리는 말인가
오직
불만이 불을 낳을 것이다
순결과 진실을
낳을 것이다
문득 숫자가
얼마나 광활한지를 생각하다가
시를 쓰겠다면서
간신히 불가능한 나는
만날 이 숫자들에
얼마나 관여하는지를
궁금해하다가
상표를 자르려다
가위를 잘못 놀리는 바람에
옷을 자르고 말았다
자르고 자르다가
내 전부를 잘랐다
실밥을 태워 없애려던 날에는
옷을 태우고 말았다
어깨에 불이 붙어
동백숲을 태웠다
아득히
불을 사용하고 싶다
불을 사용하여
이번 생에서는
체기만 내리는 것으로 한다
어떤 모르는 꽃이며
말들을 보관하느니
화덕 하나쯤 받쳐두는
저녁에
불을 담을 것이다
불속에다는
문장 대신
성냥을 모셔두겠다
영원을 대신하여
불만
남길 것이다
ㅡ이병률, 불화덕ㅡ
불피우세!
하루
성냥깨비 어딧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