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세한도, 김정희 ㅡ 본문
세한도는 한자로 이렇게 쓴다 - 歲寒圖
문자만큼이나 그림도 추워보인다
대한민국 국보제180호다
조선후기 문인 추사 김정희가 그렸다
오른쪽 그림이 자신의 제주도 귀향시 살던 오두막이고
왼쪽 문장은 발문이다
김정희가 왜 유배를 갔고 이 그림이 어떻게 그려지게 되었는지를 공부하는 것도 재미지만
오롯이 그림을 느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집과 나무 몇그루
흰 눈밭같은 배경이 그림의 전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 여백을 떠다닌다
이를테면 적막, 절제, 고독, 고고함..
그런데 새한도의 얽힌 스토리는 이러한 상념을 깨뜨린다
세한도의 발문에서 김정희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지난해엔 <만학집(晩學集)>과 <대운산방문고(大雲山房文藁)> 두 가지 책을 보내주더니, 올해에는 하장령(賀長齡)의 <경세문편(經世文編> 보내왔다. 이들은 모두 세상에 늘 있는 게 아니고 천만 리 먼 곳에서 구입해온 것들이다. 여러 해를 걸려 입수한 것으로 단번에 구할 수 있는 책들이 아니다.
게다가 세상의 풍조는 오직 권세와 이권만을 좇는데, 그 책들을 구하기 위해 이렇게 심력을 쏟았으면서도 권세가 있거나 이권이 생기는 사람에게 보내지 않고, 바다 밖의 별볼일없는 사람에게 보내면서도 마치 다른 사람들이 권세나 이권을 좇는 것처럼 하였다.
태사공(太史公)은 ‘권세나 이권 때문에 어울리게 된 사람들은 권세나 이권이 떨어지면 만나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 그대 역시 세상의 이런 풍조 속의 한 사람인데 초연히 권세나 이권의 테두리를 벗어나 권세나 이권으로 나를 대하지 않았단 말인가? 태사공의 말이 틀린 것인가?
공자께서는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였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시사철 시들지 않는다. 계절이 되기 전에도 소나무와 잣나무이고, 겨울이 된 뒤에도 여전히 소나무와 잣나무인데, 공자께서는 특별히 겨울이 된 뒤의 상황을 들어 이야기한 것이다.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은 이전이라고 해서 더 잘하지도 않았고 이후라고 해서 더 못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게 없었지만 이후의 그대는 성인의 칭찬을 받을 만하지 않겠는가? 성인이 특별히 칭찬한 것은 단지 시들지 않고 곧고 굳센 정절 때문만이 아니다. 겨울이 되자 마음속에 느낀 바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아! 서한시대처럼 풍속이 순박한 시절에 살았던 급암(汲黯)이나 정당시(鄭當時)같이 훌륭한 사람들의 경우에도 권세에 따라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였다. 하비(下邳) 사람 적공(翟公)이 문에 방문을 써서 붙인 일은 절박함의 극치라 할 것이다. 슬프구나!
완당노인이 쓴다.
세한도는 1844년 제주 대정현에서 4년째 유배돼 있던 김정희가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그림이다
통역관인 이상적은 중국 연경(베이징)에까지 가서 귀한 책들을 구해다 머나먼 제주의 김정희에게 보내주곤 했고
귀향살이를 하고 있는 스승인 추사 선생을 극진히 보살폈다
추사는 이상적을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면서 제자에 대한
애정을 극도로 절제하며 소나무로 은유화하여 표현했다
세한도는 극도의 냉기를 소재로 극도의 온기를 불어 넣어 준다
그 밑바탕에는 조선 선비들의 굳은 절개를 말하지 않더라도 인간내면에 근원적으로 존재하는 도덕율과
자율적 존재로서의 인간의지에 있다고 본다
내일부터 북극한파가 몰려 온다고 한다
더하여 바이러스19 팬데믹으로 세계가 꽁꽁 얼어붙는것 같이 스산하다
다시 빙하기가 올 것만 같다
이 추운계절에 우리도
한기를 녹일 세한도 같은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 어떨까?
"長毋相忘"
"우선(藕船)!
고맙네~내 결코 잊지 않음세!
우리 서로 오래도록 잊지 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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