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어느 오후, 백난작 ㅡ 본문
지금은 겨울의 중간쯤이고
어제같이 사소한 오후야
창밖으로 겨울풍경이 액자처럼 걸려있어
시계는 토각토각 시간을 갉아내고
먹다 남긴 라면이 붇고 있어
소파에 누워 선잠이 들었다가
공짜 술을 얻어 먹고
아람어로 술주정을 하다가
가족을 분자로 해체해 보기도 하고
오래된 시인의 시구를 읊조다가
눈물을 쏟기도 했지
너 갑자기 왜 우는거니 묻다가
왜 우는지 모르다가
째즈가 우니 나도 운다 했어
거의 웃음과 울음의 경계에서
잠시 실성도 하지
세상이 지옥었다가
살만한 움막이었다가
종족이 멸절되어 버린 황량한 지구행성
알타미라 동굴속
모닥불옆에서
너도 나도 불을 신기하게 쳐다보았지
그때 무슨 소리가 들렸어
닫혀있는 곳에서 분명 살려달라고 했어
신이 아닐까 싶었어
언어는 신의 집이라고 하지
태초에 말씀이 있었는데
알타미라 동굴에서 들었던 그 소리가
글쎄 세상을 만드는 소리였대나
흑암이 빛 위에 있었으나
빛이 어둠을 뚫고 세상을 비추니
세상이 만들어 졌대
신도 공짜를 좋아하나봐
크게 음악을 틀고 듣다가
목 쉬도록 따라 부르다가
삶은 족발을 뜯었지
뿌연 막걸리가 볼륨을 더 크게 키윘어
귀가 아프도록 소리가 나를 찔러왔어
슬픈 노래로 나를 찔러왔어
눈물을 참으려고
비트코인 시세를 훔쳐봤어
강한 비트가 느껴졌지
음악보다 더 리더미컬한 가상의 비트가
너 돈을 벌고 싶지 않니?라고 물었지
아니요 난 그러고 싶지 않아요 라고 했어
설사 내 마음이 그러고 싶더라도
안 그런척 해야 하니까
머리가 아파오는걸 보니
신이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하나봐
이제 신도 늙었고
돌봐주지 않으면
거리를 미쳐 날뛰기도해
신에게는 인간의 가호가 필요해
창밖으로 벌써 어둠이 오고 있어
원래 제자리로 온거야
밫은 어둠의 부재로 인한 것인데
자기가 주인행세를 하지
참 어처구니 없는 짓이라 생각해
어둠속에 해와 달과 별이 살지
마치 언어속에 신이 살듯이 말이야
나도 어둠속에 안기는게 편하고 좋아
어둠이 깊어갈수록
꿈도 깊어져
나는 하늘을 나는 새가 되지
이 별에서 저 별로
철새처럼 날아 다닐거야
여기는 창백한 푸른점 지구
앞마당에 쑥부쟁이가
고동색 고드름처럼 달려있고
누른이빨 같은 잔디가 봄을 기다리며 누워있어
지금은 겨울의 중간쯤이고
나는 푹신한 소파에 누워
게으른 휴일 오후를 보내는 중이야
알아둬도 쓸데없는 이야기 들어 주느라
힘들었을거야
참 고맙다
헛된 시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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