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슬픈 연대 본문
한 사내가 내 방의 중심을 차지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나보다 몇 살 아래인 그 사내.
신문을 보며 나의 아내를 불러 커피를 시키고, 아내는 상냥한 대답으로 시중을 든다. 내가 방에 있는데도 아내나 그 사내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키스를 하고 섹스를 한다.
나는 들키지 않으려고 방구석
피아노 뒤에 숨어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만 보고 있다.
아이들이 학원에서 돌아와
그 사내에게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나는 지금 이 방에 있으되
나의 不在에 대하여 고민을 한다.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아 사내는 아내의 어깨에 손을 걸치고 TV를 보고 있다. 나도 그 옆에서 아내가 깎아 놓은 사과를 깨물며 TV를 곁눈으로 보고 있다. 아이들이 각각 자기 방으로 들어가자 그 사내는 아내와 깊은 섹스를 한다.
다시 나의 방에서 나의 不在를 알리는 쾌종시계가 바쁘게 타종을 한다. 꽈아앙, 꽝꽝. 이제 나는 내 방의
한 구석에 나를 버려둔 채,
중년의 슬픈 연대를 쓰기 시작한다.
운다고 옛사랑이 다시 오련만 뭐, 이렇게 시작하는.
ㅡ이종진, 슬픈 연대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