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파르마콘 본문
석박사 약국에 약을 사러 갑니다
동네에서도 소문난 석박사 약국
발 디딜 틈 없는 사람들로 북적댑니다
모두 박사님의 환자들입니다
만병통치한다는 마법의 약,
독감을 녹이고 홧병을 녹이고
우울증을 녹인다지요
힐끗 나를 한 번 훑어본 박사는
재빨리 조제실 너머로 사라집니다
또닥또닥 무언가를 떨어뜨려
빻기도 하고 갈기도 하는 박사의 익숙한 손끝에서
내가 한 번도 듣지 못한 성분들이 배합됩니다
창가에서는 아스파라거스가 피고 완두콩이 열립니다
출처가 꼬인 덩굴손이 남남쪽으로 뻗어갑니다
미심쩍은 햇살과 오후 두 시의 불안이
도가니 안으로 빨려듭니다
금박의 수상쩍은 자격증도 빨려듭니다
어쩌면 박사는 한눈에 나의 증상을 읽어내고
흥분제와 진정제를 묘한 비율로 섞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강단 한 알, 연민 한 술
극소량의 독 한 방울이 첨가될 지도 모릅니다
오늘부터 당신은 나의 환자입니다
약을 건네주는 박사님의 눈빛이 잔인하게 부드럽습니다
거부할 수 없는 그 눈빛에 압도된 순간
나는 내용물을 복용합니다 이름도 성분도 모르는
오래 중독될 어떤 불온을
비슷한 명함은 도처에 있습니다
ㅡ이인주, 파르마콘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