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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에 대한 질문

난자기 2016. 3. 15. 12:34

소득 재분배와 관련한 정치철학적 문제로 흔히 공리주의,존 롤즈주의,로버트 노직주의 등의 기준이 제시된다. 이들의 견해를 잘못 설명한 것은?

①공리주의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가정한다.

②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기준을 제시한다.

③공리주의와 존 롤즈주의를 비교할 때 공리주의가 소득 재분배를 더 강조한다.

④로버트 노직은 본질적으로 재분배 정책은 필요없다고 본다.

⑤존 롤즈의 견해에 의하면 정의란 무지의 베일에 가려진 상황에서 선택하는 기준으로 최소 수혜자의 복지를 중요시한다. 




[ 해설 ] 소득 재분배의 정치철학으로는 전통적인 공리주의와 존 롤즈의 진보주의(liberalism),로버트 노직의 자유주의(libertarianism)가 대표적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공리주의는 한계효용체감을 기초로 한다. 부유한 사람의 1달러보다 가난한 사람의 1달러가 큰 효용을 창출하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총 효용을 극대화하려면 부유한 사람에게 1달러를 주는 것보다 가난한 사람에게 1달러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부자의 1달러를 가난한 자에게 주면 공리주의적 원칙은 충족된다.

그렇다고 공리주의자들이 모든 사회 구성원의 소득이 똑같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공리주의자들은 사람들이 경제적 유인에 반응한다는 원리를 인정한다. 즉 소득이 높은 사람이 많은 세금을 내고 낮은 사람은 정부의 보조금이나 사회보장 제도의 혜택을 받아야 하지만 세금은 열심히 일하려는 의욕을 저해하므로 사회 전체적으로 손실이 된다. 그래서 공리주의자들은 평등에서 오는 이익과 근로의욕 저하에서 비롯되는 손해를 잘 따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존 롤즈는 사회의 각 단체,법,정책이 정의로워야 한다는 전제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롤즈는 어느 누구도 자기가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그 사회에 태어날지 모른다고 가정하는 '무지의 베일' 뒤에 가려진 '초기 상태'에 있다고 가정한다. 모두 같은 입장에 있고 아무도 자신의 사적 이익에 유리한 원칙을 세울 수 없다면 공정한 합의의 결과로 정의의 원칙이 도출된다는 것이다.

롤즈는 초기 상태에서는 누구나 자기가 소득 분배의 최하위층에 떨어지지 않을까를 염려하기 때문에 공공정책의 목표는 사회 최빈층의 복지를 증가시키는 것이어야 한다고 추론한다. 공리주의자처럼 모든 사람들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 수혜자층의 효용을 증대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최소 극대화 기준이라고 부른다. 롤즈는 공리주의보다 소득 분배를 더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로버트 노직은 분배 원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쓸데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제활동의 결과를 평가하기보다는 결과가 나온 과정의 공정성을 더욱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직 등 시장 자유주의자들은 기회의 균등이 결과의 균등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모든 이들이 재능을 발휘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기회의 균등을 보장해야 하고 이런 게임의 규칙이 정립되면 소득 분배에 대해 정부가 관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40년 동안 '정의' 한 주제만을 파고든 20세기 가장 위대한 정치철학자 중 하나
이미 고전의 반열에 든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의 저자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1]

20세기의 윤리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이다. 20세기 중반까지 언어적, 개념적 분석에 치중하는 분석철학(analytic philosophy)이 유행하던 영미철학 지형에 『공정으로서의 정의(1958)』와 『정의론(1971)』[2]이라는 걸출한 정치철학 텍스트를 발표하면서 윤리학, 정치철학과 같은 규범적 논의를 부활시킨 일등공신이라는 평을 받는다. 실제로 롤스가 정의론을 발표한 후 롤스의 프로젝트를 옹호하는 로날드 드워킨 같은 걸출한 자유주의 법철학자도 주목받게 되었으며, 자유지상주의 진영의 로버트 노직, 공동체주의 진영에서 마이클 샌델, 마이클 왈저, 찰스 테일러,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가 각각 정의론에 대한 의미 있는 비판을 내놓으면서 소위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의 불을 지핀다. 이 논쟁은 원래 영미권, 그 중에서도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된 논쟁이었음에도 후에 분석철학자이자 네오프래그머티스트였던 리처드 로티나 독일을 대표하는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도 참가했을 정도로 서구 지성사의 메인이 되는 논쟁이므로 롤스의 파급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롤스라고 하면 『정의론』만을 떠올리는 게 보통이고 실제로 롤스의 저서 중에서 이 책이 가장 중요하긴 하다. 그러나 후기 롤스[3]의 저서인 『정치적 자유주의(Political Liberalism, 1993)』와 『만민법(The Law of Peoples, 1999)』도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나 전공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 나올 때마다 영미 정치철학계가 뒤집혔다고 보면 된다.


롤스의 정치철학

롤스의 정치철학을 설명할 때는 전기 롤스와 후기 롤스를 나누어서 설명하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일반인들한테는 전기 롤스만이 알려져 있지만. 『정의론』, 그러니까 전기 롤스에서는 주로 공리주의적 정의론의 약점을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 의무론적 성격과 계약론적 성격을 띠는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제시하는 데 치중한다. 그러면서 등장하는 이론적 장치가 흔히 들어 익숙할 원초적 입장, 무지의 베일이고 거기서 도출되는 정의의 두 원칙이 ①평등한 자유의 원칙과 ②차등의 원칙이다.

후기 롤스, 특히 『정치적 자유주의』에서는 『정의론』에서의 구상을 이어가면서도, 거기서 제시한 정의론이 어떤 인간 본성에 대한 특정한 가정[4]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입헌민주주의의 정치제도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것으로, 서로 다른 철학적, 종교적, 형이상학적 신념을 지닌 시민들 간의 '중첩적 합의'를 통해 자신의 정의론을 정초할 수 있다는 점을 논증한다.

   전기 롤스

모든 사람은 전체 사회의 복지라는 명목으로도 유린될 수 없는 정의에 입각한 불가침성을 갖는다.

『정의론』의 1절에 나오는 유명한 말. 이 한 마디로 자신이 공리주의에 사회 정의의 문제를 전적으로 맡기는 것에 반대한다는 점을 명백히 한다. 그렇다면 롤스가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롤스는 정의를 내용에서 찾기보다는 공정한 절차에 의한 합의에서 찾는다. 공정한 절차를 보장하기 위해 롤스가 도입한 장치가 원초적 입장(original position)이다. 원초적 입장은 일종의 사고 실험 장치이자 사회 구성원이 정의의 원칙에 합의하기 위해 수용해야 할 도덕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원초적 입장을 특징짓는 조건은 크게 두 가지다.

①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인간 사회에 관한 일반적 사실법칙은 알고 있으나, 이러한 지식이 아닌 자신의 자연적 재능, 사회적 지위, 인생 계획, 자신의 가치관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인지적 조건.
②합의의 당사자들은 자기이익을 극대화하고 타인의 이해 관계에 대해서는 상호 무관심한 합리적 존재라는 동기적 조건.

원초적 입장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롤스가 말하는 정의의 두 원칙에 합의하게 된다.


제1원칙(평등한 자유의 원칙)
각자는 모든 사람의 유사한 자유 체계와 양립할 수 있는 평등한 기본적 자유의 가장 광범위한 전체 체계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제2원칙(차등의 원칙)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다음 두 가지, 즉 (a)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이 되고, (b) 공정한 기회 균등의 조건 아래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된 직책과 권위가 결부되게끔 편성되어야 한다.


제1원칙은 한마디로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언론·집회의 자유, 선거의 자유, 공직 및 개인 재산을 소지할 자유 등 보통 헌법상의 기본권에 해당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유를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원칙이다.
제2원칙은 그 사회의 최소 수혜자, 즉 가장 약자인 자에게 가장 많은 분배의 이익이 돌아가도록 할 때에만 불평등을 허용한다는 말이다. 즉 약자를 배려하는 한에서 성장과 발전이 용인될 수 있다는 의미. 이 차등의 원칙 덕에 처음에는 사회주의와 고전적 자유주의 양쪽에서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롤스의 자유주의는 순수하게 자유만을 주장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도 구별되며,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와도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자 롤스의 기획이 오히려 자유를 내세우면서도 분배 정의와 평등의 문제를 적절하게 조화시키려는 대담하면서도 대단히 체계적인 시도임이 알려지면서 양 진영에서도 롤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졌다고 한다.




     후기 롤스

전기 롤스와 후기 롤스를 나누는 분기점은 보통 1985년에 롤스가 발표한 논문 「공정으로서의 정의 : 형이상학적이 아니라 정치적인(Justice as Fairness : Political not Metaphysical」으로 본다. 그리고 이를 1993년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집대성한다.

두 텍스트에서 롤스는 『정의론』의 논의가 정의에 대한 포괄적 교설(comprehensive doctrine)과 순전한 정치적 구상을 명확히 구별하지 않는 인상을 준다는 점을 인정한다. 포괄적 교설은 쉽게 말하면 개인이 갖고 있는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신념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갑은 기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고 을은 불교적 신념을 갖고 있다면 둘은 서로 다른 포괄적 교설을 갖고 있는 것이다. 롤스는 입헌민주주의 사회에서 각 개인들이 서로 다른 포괄적 교설을 갖는 것을 하나의 거부할 수 없는 사실로 인정한다. 즉 롤스는 다원주의를 인정한다. 롤스는 이러한 다원주의 사회에서는 특정한 포괄적 교설을 정치제도로서 강요하는 정치철학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 대신 서로 다른 포괄적 교설들이 중첩되는 지점에서 중첩적 합의(overlapping consensus)를 도모해야 한다. 한마디로 사회 구성원들이 기독교를 종교로 갖든 불교를 종교로 갖든, 핵심적인 헌법상의 기본권들과 정치제도에 대해 대강 비슷한 이미지를 그리기만 하면 '정치적 자유주의'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후기 롤스에서 강조되는 점은 여전히 옳음의 좋음에 대한 우선성이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특정한 좋음(선)에 대한 선호를 토대로 하는 게 아니라, 옳음의 범위 안에서 시민들이 좋음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한다. 물론 핵심적인 헌법상의 기본권과 정치제도에 대해서는 중첩적 합의를 이루어야 하므로,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길가는 아무나 잡아패도 된다"와 같은 '좋음'을 추구하는 것은 옳음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시민들에게 일종의 의무(폭력을 행사하지 말라는)로 요구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기부를 많이 할 거야"와 같은 좋음은 물론 옳음의 범위 안에 있을 테니 허용될 것이고, 또한 그것은 의무로서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기부를 하든 말든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으로 남겨놓는 것이다. 이런 부분은 샌델 등의 공동체주의들과 확연히 대비된다. 공동체주의자들은 특정한 좋음을 미덕(virtue)이라 하여 시민들이 이러한 미덕을 갖출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편이기 때문. 샌델과 같은 경우에는 교육이나 지역 사회 등의 영역에서 시민들이 미덕을 적극적으로 배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거칠게 말하면 롤스의 경우에는 정치도덕과 '분리'하려는 데 반해, 샌델의 경우에는 정치도덕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