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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 유경희 본문

노마드 / 유경희

난자기 2016. 5. 9. 11:01

초지를 찾을 수 없어서
집을 짓기 시작했지
바닥을 놓으니
땅의 노래를
들을 수 없었다
기둥을 세우니
풍경이
상처를 입는다
지붕을 만드니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낮에는 갈 곳이 없었고
밤에는
무엇엔가 쫓겼어

내가
지상에서
바라는 것
하나
우루무치행
편도 티켓 하나

ㅡ유경희, 노마드ㅡ


[작당이]

노마드는 냉정하다
미련이나 여운을 남기지 않는다
머무름은 그들의 목적이 아니다
귀환이라는 개념은 생소하기만 하다
떠나면 뒤돌아 보지 않는다
떠나온 곳에 대한 그리움은 떠나 갈 곳에 대한 희망에
고스란히 묻혀버린다
그래서 그들은 땅에다 표식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죽으면 풍장을 한다
이별은 그들에게 있어 너무나 담담한 것이다
그들은 가볍게 악수를 하고 헤어진다

반면 농경민들은 언제나 노래한다
고향, 노스텔지어...
나그네는 길을 가고 있지만 그의 목적은 머무를 곳이다
떠남은 돌아옴에 언제나 귀속되어 있다
그들은 미련 덩어리다
떠난 자는 머무름에 대한 회한과 번민과 후회로 잠을 설친다
그들 뒤에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여운들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가족과 친지와 친구들, 고향 산야, 경작을 하던 땅….
그들에게 이별의 악수는 재회의 약속에 다름 아니다

농경민의 유전자를 간직하고 있는 우리나라 남도의 사람들은
이런 노래에 눈시울을 붉힌다

“선영 뒷산의 잡초는 누가 뽑으랴~~~어야 어야 어야어 어허허어야어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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