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기일기
고사목지대 / 이영광 본문
죽은 나무들이
씽씽한 바람소릴 낸다
죽음이란
다시 죽지 않는 것
서서
쓰러진 그 자리에서
새로이
수십 년씩 살아가고 있었다
사라져가고
숨져가며,
나아가고 있었다
유지를 받들 듯,
산 나무들이
죽은 나무들을
인정해주고 있었다
정상 부근에서는
생사의 양상이 바뀌어
고사목들의
희고 검은 자태가
대세를 이룬 가운데
슬하엔 키작은 산 나무들
젖먹이처럼 맺혔으니,
죽은 나무들도
산 나무들을
깊이 인정해주고 있었다
나는
높고 외로운 곳이라면
경배해야 할
뜨거운 이유가 있지만,
구름낀
생사의 혼합림에는
지워 없앨 경계도
캄캄한 일도양단도 없다
판도는 변해도
생사는
상봉에서도
쉼없이 상봉 중인 것
여기까지가
삶인 것
죽지 않는 몸을
다시 받아서도
더 오를 수 없는
이곳 너머의 곳,
저
영구동천에 대하여
내가 더 이상
네 숨결을 만져
너를
알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무슨 신앙
무슨 뿌리깊은 의혹이 있으랴
절벽에서
돌아보면
올라오던 추운 길
어느 결에
다 지우는 눈보라,
굽이치는 능선너머
숨죽인 세상보다
더 깊은
신비가 있으랴
ㅡ이영광, 고사목지대ㅡ
사라져가고
죽어가며
나아가고 있었나
타박타박
걸어가다
달리기도 해보는
생생길! ... 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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