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에서의 다다이즘'/ 이장욱
그 사람은 총을 쥐고 은행에 들어갔다.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번호표를 뽑고
성실하게
총을 난사하고
고독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태어나기 이전을 상기하고
자꾸 고백했다.
은행에서
슬픔에 빠진 마임배우는 어디까지
희미해지나.
창구를 향해 가늘고 긴 팔을 내뻗는 이 사람은.
떨리는 손끝에서 흩어지는 총알은.
오늘은 죽은 사람의 세금을 납부하고
지급할 만한 외로움을 산출하고
막 깨어난 얼굴로
폭탄선언을
나는 65%나 자살합니다!
나는 내일 또 태어나고
나는 점점 더 채무에 시달리고
나는 유언을 할 수 있습니다!
은행에서
직원이 친절하게
나갈 곳을 알려주었다.
그 사람은 신중한 표정으로
총을 난사하며
조금 더 깊은
의심에 차서
* 나는 65%나 자살한다 : 트리스탄 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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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서사(적 요소)를 도입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유의해야 할 것이 한 편의 시에서 너무 많은 인물이 등장할 때 시가 무너지기 쉽다는 점입니다. 시는 그 속성 상 압축과 여백, 생략 등을 특징으로 갖고 있기 때문에 한 편의 시에서 여러 인물들이 등장할 때 서로 충돌하고 우왕좌왕하기 쉽겠습니다. 감당하기가 버겁겠습니다. 이 시는, 시가 서사를 다루는 하나의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시에는 단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시적 화자인 ‘나’(‘은행 강도’와 ‘마임 배우’도 ‘나’의 페르소나로 보입니다)와 ‘직원’. 충분히 서사적인 이 시의 시적 성취는 어쩌면 등장인물의 간결함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경찰이 등장하고 다른 고객이 등장하는 장면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겠는데 그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겠지요. 이렇게 간결한 구조 안에서 시의 화자는 이상한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65%나 자살합니다!/ 나는 내일 또 태어나고/ 나는 점점 더 채무에 시달리고/ 나는 유언을 할 수 있습니다!/ 은행에서”. 그렇습니다. 은행에서 유언을 하는 일이 시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습니다. 이렇게 이상한 감각을 통해 시인은 우리에게 ‘낯설고’, ‘다른’ 층위의 삶의 모습을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어떤 부조리극처럼, 어떤 슬픈 코미디처럼, 이 시는 우리 삶의 고단함을 기이한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총을 난사하고/ 고독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태어나기 이전을 상기하고/ 자꾸 고백”합니다.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일상이, 우리가 견뎌내는 일상이 너무 이상하기 때문에 이 이상한 상황은 웃기지도 슬프지도 않게 우리에게 스밉니다.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이상해졌을까요. “총을 난사하며/ 조금 더 깊은/ 의심에 차서” 우리는 어쩌다 이 세계를 다만 견디고 있는 것일까요. “다다이즘”, 그것은 어쩌면 미학 용어가 아니라 우리 일상의 다른 이름이겠습니다.
- 이장욱, 시집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문학과지성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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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이즘 (dadaism) *
" 모든 것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 모든 것에 반항하는 것, 즉 기성의 모든 도덕적, 사회적 속박으로부터 정신을 해방시키고 개인의 진정한 근원에 충실하고자 했다.
다다이즘은 1915~22년경 스위스, 독일, 프랑스 등의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났던 반 문명, 반 합리적인 예술운동을 일컫는다. 미술을 포함해서 제1차 세계대전을 낳게 했던 전통적인 문명을 부정하고 기성의 모든 사회적·도덕적 속박에서 정신을 해방, 개인의 진정한 근원적 욕구에 충실하고자 했던 것이 이 운동의 근본정신이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부정하는" 전적으로 무정부적인 이운동의 이름을 지을 때, 프랑스어 사전을 펼치고 그들이 본 첫 번째 단어를 선택하기로 하는데, 이 단어가 바로 다다였다.
루마니아의 시인 차라, 독일의 작가 후고 발, 리하르트 휠센베크, 스위스의 화가 장 아르프등이 선도자가 되었는데, 이 운동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또는 전후에 세계로 급속히 확대되었다.
독일에서는 반전운동과 코뮤니즘에 결합된 베를린 다다가 1919년에 결성되었다. 퀼른에서는 아르프, 에른스트, 요하네스 바르겔트에 의해 전람회가 개최되었다. 하노버에서는 쿠르트 수비터스가 메르츠빌트를 창안했다. 그리하여 1920년대 초기에는 다다운동이 거의 전 유럽과 미국에까지 미쳐 1922년 파리에서 대규모의 국제전이 개최되었다. 그리고 24년 초현실주의가 발족되면서 해체되었다.

다다이스트의 대표 작가<뒤샹>
다다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인 뒤샹은 1913년 유화를 걷어 치우고 'read made<기성품>' 작품인<샘(fountain)>을 출품하게 되는데 전시가 거절되었다. 이<샘>이라는 작품에서<오브제>를 발견된 오브제라고 명명하고 기존의 일상적 물건이 제목을 달아줌으로써 그 근본의미가 변하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이 변기가 화랑에 놓임으로써 본래의 기능은 제거되고 화랑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미적 대상이라는 새로운 사물이 된다는 것은 개념의 변화 자체가 현대 미술에서 하나의 중요한 주제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 작품의 공통적인 경향은 기계같이 잘 짜 맞추어진 이성에 반대하고 우연성을 강조하는 예술을 추구하였다. 우연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그들은 소위 레디메이드의 오브제 또는 움직이는 오브제, 콜라주 또는 앗상블라주로 통하는 메르츠 빌트 등을 시도하게 된다. 특히 다다이스트 들은 우연성을 강조하기 위해 해프닝을 즐겨 상연하였는데, 사전 의도 없이 시행되는 해프닝은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기위한 시도로 이러한 다다이스트들의 기이한 방법 들은 다다의 강렬한 가치 부정적 관념과 함께 추상미술, 초현실주의 또는 제2차 세계대전 후 60년대 예술 등에도 강한 영향을 주었다.
다다이스트 들이 남긴 유명한 말들
뒤 샹: "나는 변기를 들어 현대 미술의 면상에 집어 던졌다."
차 라: "다다는 체계에 반대한다. 체계 없는 체계이다. 그리고 다다는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리히터: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 우리들은 자연히 미지의 세계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아르프: "아카데믹한 회화는 자연과 인생을 기만하고 있다."
하지만 다다이즘은 자기모순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다이스트들은 모든 것에 대한 부정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들 마저는 부정할 수 없었으며, "반예술"로서의 예술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신념의 리얼리티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마르셀 뒤샹,<샘>1917]
뒤샹은 남성용 소변기에 사인을 하고 자신의 작품이라고 하고 있다. 이렇게 작가가 직접 만들지 않은 기성품을 작품으로 제시한 것을 우리는 레디메이드(readymade)라고 부른다. 우리가 어떤 것을 미술작품이라고 부를 때는 그것이 예술가의 손을 거쳐서 완성된 유일무이한 물건임을 말한다. 예술가는 마치 신처럼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여겼다. 그런데<샘>은 이 세상에 유일무이하게 존재하는 독특한 물건도 아니고, 이 작품에선 예술가의 독창성이 발휘되고 있지도 않았다. 이 변기를 만드는 회사에선 하루에도 수 천개의 변기를 만들어 낼 터이고, 뒤샹은 단지 그 중 하나를 구입해서 전시했을 뿐이다.
사실 1917년 당시 뒤샹은 이 작품을 전시할 수 없었다. 전시회에서 받아들여 주질 않았죠. 우선 작가가 창조한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로 인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수 십년이 지나고 나서 이 작품은 하나의 신화가 되었고, 미술애호가들에 의해 수집되기까지 한다.
<샘>이 하나의 미술작품이라면,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 뒤샹이 이 물건을 선택하여 미술작품으로 결정하고 여기에 서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미술가는 작품을 창조하는 대신 선택하는 사람이다. 예술작품으로 그가 이것을 스스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여느 미술가들처럼 그는 서명을 한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이름 대신 R. Mutt라는 이름을 써 넣었다. 도대체 Mutt는 누구일까? 그것은 실존인물의 이름도 아니고, 뒤샹의 가명도 아니다. 그냥 허구의 이름일 뿐인데, 사실 영어에서 mutt란 잡종 개, 바보라는 의미를 지닌 명사이다.
두 번째로, 이 변기가 작품이 될 수 있는 요건은 이것이 미술관 혹은 그에 준하는 어떤 장소에 전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에 이 변기가 어느 화장실에 설치되어 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성들의 배설 욕을 해소하기 위한 도구가 되겠지만<샘>이라고 명명된 이 변기는 그런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사물이 놓여 있는 위치가 그 사물의 원래 기능을 전도시킨 것이다.

[마르셀 뒤샹,<자전거 바퀴>1913]
뒤샹의 최초의 레디메이드라고 알려진 작품이다. 자전거 바퀴와 의자를 연결해 놓았다. 아주 엉뚱한 결합이다. 다다이스트들은 이렇게 서로 아무 관련이 없는 사물들을 엉뚱하게 결합시키는 일을 아주 즐겼다. 이 작품은 문득 "파란 장미"와 같은 불가능한 문구를 연상시킵니다. 세상에 파란 장미는 없다. 하지만 우린 "파랗다"라는 형용사와 "장미"라는 명사를 결합시켜 하나의 문구를 만들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자전거와 의자는 서로 아무런 상관도 필요도 없는 물건들이지만 이렇게 이질적인 사물들을 결합시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 것이다. 이런 작품을 통해 우리는 일상적인 사물에 대한 전혀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마르셀 뒤샹, L.H.O.O.Q>1919]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모나리자>이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은 콧수염이 있는 모나리자이다. 이런 모습으로 인해 전혀 모나리자처럼 보이지 않기도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는 모나리자는 신비스러운 매력을 풍기는 여인인데, 이 그림 속의 인물은 수염이 난 남자이기 때문이다. 뒤샹은 모나리자를 복사한 그림위에 수염을 그려 넣는 장난을 했다. 그리고는 밑에다 L.H.O.O.Q>라는 제목을 적어 넣었다. 이 알파벳 문자열을 불어로 읽으면, "엘르(L) 아쉬(H) 오(O) 오(O) 뀌(Q)"가 되는데, 이것을 연음시켜 "엘라쇼오뀌"라고 읽으면 "그녀는 뜨거운 엉덩이를 가졌다(Elle a chaud au cul)"라는 문장과 같은 발음이 된다. 동음이의를 이용한 말장난(pun)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모나리자의 신비스런 미소는 사람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런 상상의 여지를 풍부하게 하고 있는 것이 레오나르도의 천재성이기도 하다. 이 문제의 미소 때문에 사람들은 갖가지 말들을 지어내었다. "그녀가 왜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지 알아? '난
사실 남자란 말이야. 레오나르도는 사실 호모였거든..'하면서 우릴 비웃고 있는거야...." 과연 뒤샹이 그녀의 얼굴에 수염을 그려 넣으니, 모나리자는 정말로 남자처럼 보이는 것 같다.
수정된 레디메이드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샘>이라는 제목의 변기를 전시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예술의 전통을 모독하는 행위로 읽혀질 수 있다.<모나리자>하면 우리가 명화의 대명사처럼 여기는 작품인데, 소위 명화의 권위와 그러한 권위를 부여하는 전통에 대한 조소어린 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뒤샹은 20세기 미술의 역사에서 피카소에 비견될만한 영향력을 행사한 미술가이다. 뒤샹은 그의 다양한 예술 활동을 통하여 미술의 정의와 미술가의 독창성에 대한 기존의 관념에 노골적인 도전을 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의 미술은 다다의 정신을 적극적으로 표명한다.